살며 사랑하며/고전의 향기 21

[2009.10.15 (수) 맑음] 청빈(淸貧), 청부(淸富)

素富貴。行乎富貴。素貧賤。行乎貧賤。 소부귀。행호부귀。소빈천。행호빈천。 부귀한 처지에 있으면 부귀에 걸맞게 행동하고, 빈천한 처지에 있으면 빈천에 걸맞게 행동하라. - 윤기(尹愭), 〈빈부설(貧富說)〉, 《무명자집(無名子集)》 ‘부자아빠 되기’, ‘재테크 전략’ 등 돈 잘 버는 비법을 다루는 책이 쏟아져 나옵니다. 어쩌면 그런 책을 만들어 파는 일 자체가 돈 버는 비법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자본주의의 시대, 돈이 얼마나 많은가가 성공의 잣대가 되고, 돈을 얼마나 잘 벌 수 있는가가 신지식인을 선정하는 기준이 되는 세상이니 그런 것을 탓할 수만은 없겠습니다. 그런데 묘한 건, 이렇게 너도나도 돈을 벌고 싶어 하면서도 정작 돈을 잘 버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리 우호적이지만은 않다는 점입..

[2009.10.08 (목) 맑음] 초라한 나의집

心安身便 孰謂之陋 심안신편 숙위지루 마음이 안정되고 몸이 편안하거늘 그 누가 누추하다 하는가. - 허균(許筠),〈누실명(陋室銘)〉,《성소부부고(惺所覆瓿稿)》 위 글은 조선 중기의 문인 성소(惺所) 허균(許筠 1569~1618)이 지은〈누실명(陋室銘)〉의 일부입니다. 저자는 해가 들면 밝고 따스한 집에 삽니다. 다른 것은 없더라도 책은 두루 갖추어두고, 차를 따르거나 향을 사르며 천지(天地)와 고금(古今)에 대한 생각에 잠기곤 합니다. 남들은 저런 누추한 집에서 어찌 사나 하겠지만 자신에게는 신선 세계가 따로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음이 안정되고 몸이 편안하거늘 그 누가 누추하다 하는가? 내가 누추하다고 여기는 것은 몸가짐과 명예가 모두 썩은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누추한 집에서 다소 궁핍하게 살아도..

[2009.10.01 (목) --비] 可憐利害相形處 只見絲毫不見軀 ( 벼랑에서 싸우다니)

可憐利害相形處 只見絲毫不見軀 가련이해상형처 지견사호불견구 가련타, 이해가 상충되는 곳이라면, 작은 이익 집착할 뿐, 몸은 아니 돌아보네. - 권구(權榘),〈투자(鬬者)〉,《병곡집(屛谷集)》 ‘당국자미(當局者迷), 방관자명(傍觀者明)’이라는 말이 있다. 당사자들보다 훈수 두는 사람이 바둑수를 잘 보게 마련이라는 뜻이다. 제삼자가 되면 이해관계에서 초월하기 때문에 훨씬 객관적으로 형세를 관찰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이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은 항상 이해가 대립하지 않을 수 없다. 관계자가 작게는 두 사람, 크게는 수천, 수만 명이 될 수도 있다. 대부분은 자신의 이익만을 극대화하기 위해 극렬하게 싸운다. 병곡(屛谷) 선생이 위 시구의 앞 구절에서 설정한 것처럼 싸우는 장소가 천길 벼랑 위일지라도 아랑곳하지 않..

[2009.09.30 (수) --비] 天道無親, 常與善人 ... (사마천의 후예들)

“或曰... ‘天道無親, 常與善人.’ 若伯夷•叔齊, 可謂善人者非邪? 積仁潔行如此而餓死! 且七十子之徒, 仲尼獨薦顔淵爲好學. 然回也屢空, 糟糠不厭, 而卒蚤夭. 天之報施善人, 其何如哉? 盜蹠日殺不辜, 肝人之肉, 暴戾恣睢, 聚黨數千人橫行天下, 竟以壽終. 是遵何德哉? 此其尤大彰明較著者也. 若至近世, 操行不軌, 專犯忌諱, 而終身逸樂, 富厚累世不絶. 或擇地而蹈之, 時然後出言, 行不由徑, 非公正不發憤, 而遇禍災者, 不可勝數也. 余甚惑焉, 儻所謂天道, 是邪非邪?” “어떤 이는 말한다. ‘하늘의 도는 특별히 친하게 여기는 대상이 없고, 항상 선인(善人)의 편에 선다.’라고. 그렇다면 물어 보겠다. 백이와 숙제는 선인이라고 할 수 있는가, 없는가. 선인이라고 그대도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토록 인덕(仁德)을 쌓고 ..

[2009.09.24 (목) 맑음] 王於我足矣。 而帝以何德堪之。 (아첨의 기술)

王於我足矣。 而帝以何德堪之。 왕어아족의。 이제이하덕감지。 왕이라는 명칭이면 나에게는 충분하니, 황제라는 명칭이야 내가 무슨 덕이 있어 감당하겠느냐? - 이하곤(李夏坤),〈아첨하는 여우 이야기[媚狐說]〉,《두타초(頭陀草)》 여우는 호랑이에게 아첨을 잘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호랑이는 기분이 좋아서 자기가 먹던 것을 여우에게 남겨주곤 했죠. 그러던 어느 날 여우는 호랑이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모두들 당신을 ‘산중의 왕’이라고 부르지만, ‘왕’ 보다는 ‘황제’가 더 높습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당신을 ‘황제’라고 불러서 모든 짐승들에게 존귀함을 과시하는 게 어떨까요?” “아니다. 기린은 나보다 어진데도 황제라고 부르지 않고, 사자는 나보다 용맹한데도 황제라고 부르지 않더구나. 왕이라는 명칭이면 나에게는 충분..

[2009.09.17 (목) 맑음] 與其視人寧自視。 與其聽人寧自聽。(나에게서 구하라)

與其視人寧自視。 與其聽人寧自聽。 여기시인녕자시。 여기청인녕자청。 남을 보느니 나 자신을 보고 남에게서 듣느니 나 자신에게서 들으리라. - 위백규(魏伯珪),〈좌우명(座右銘)〉,《존재집(存齋集)》 위 글은 조선 중기 문인 존재(存齋) 위백규(魏伯珪 1727 ~ 1798)가 10세 때에 지은 좌우명(座右銘)입니다. 요즘으로 따지면 초등학교 3학년생 정도 된 어린이가 세상을 살면서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노라 선언한 것으로, 자신을 굳게 믿지 않고는 하기 어려운 말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판단해 해결할 수 있는 일을 가지고도 남에게 의존해서 결정하려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들은 어떻게 하나?’ 두리번거리고, ‘남들이 뭐라 할까?’ 초조해하느라, 정작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스스로 만족..

[2009.09.10 (목) 맑음] 未可以言而言者 其罪小。可以言而不言者 其罪大。(침묵하는 죄가 더 크다)

未可以言而言者 其罪小。可以言而不言者 其罪大。 미가이언이언자 기죄소 。가이언이불언자 기죄대。 말하지 말아야 할 때에 말하는 것은 그 죄가 작지만, 말해야 할 때에 말하지 않는 것은 그 죄가 크다. - 조선(朝鮮) 정조(正祖),〈추서춘기(鄒書春記)〉,《홍재전서(弘齋全書)》 ‘설화(舌禍)’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말은 화를 불러들이는 문입니다. 어떻게 말을 하느냐에 따라 화가 될 수도 있고 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요즘 들어 말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부쩍 늘어났습니다. 아마도 인터넷 같은 여론 전달 수단들이 발전하다보니 연예인, 정치가, 지도층 인사들의 부적절한 말 한마디는 곧 비생산적인 소모전으로 이어질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선현들은 말을 조심하라고 가르쳤습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아예 말 자체..

[2009.09.03 (목) 맑음] 樂極而生哀。當益而慮謙。(좋은일을 만났을 때)

樂極而生哀。當益而慮謙。 락극이생애。당익이려겸。 즐거움이 극에 달하면 슬픔이 생기고 유익한 일을 당하면 겸손하기를 생각해야 한다. - 남효온(南孝溫), 〈유해운대서(遊海雲臺序)〉, 《추강집(秋江集)》 〈해운대〉라는 영화가 천만 관객 동원으로 화제가 되었습니다. 완성도 있는 컴퓨터그래픽에 가족이나 휴머니즘을 담은 이야기를 집어넣어 확실한 볼거리를 제공했다는 점과, 모두에게 친숙한 관광지가 실제 배경이 되었다는 점이 인기를 끄는 요인이었다고 합니다. 해운대는 이미 오래 전부터 명승지로 이름난 곳이었습니다. 남효온(南孝溫:1454~1492) 선생의 표현에 따르면, “큰 바다가 망망하고 수평선이 아득한 곳에 푸른 하늘에 뿌리박아 볼록 솟은 산이 있고 파도와 맞닿는 곳에 천 명의 인원이 앉을 만한 푸른 바위”가 해..

[2009.08.27 (목) 맑음] 伐以增矜 悶以益恥 (뽐냄은 교만을 늘리고 번민은 부끄러움을 더한다.)

伐以增矜 悶以益恥 벌이증긍 민이익치 뽐냄은 교만을 늘리고 번민은 부끄러움을 더한다. - 이만부(李萬敷), 지명잠(知名箴), 《식산집(息山集)》 이 글은 조선 후기 식산(息山) 이만부(李萬敷 1664~1732)의 문집 《식산집(息山集)》에 실린 원조오잠(元朝五箴) 중 지명잠(知名箴)의 일부를 번역한 글입니다. 저자는, 내면이 허한 자는 남이 알아주기만 바라지만, 학문이 시원스레 넉넉해지면 그 명성이 사방에 퍼진다고 하면서, 알려지지 않을까를 걱정하지 말고 소문만 번드르르하게 날까를 걱정하라고 합니다. 이어 옛날 자로(子路)는 알려질까 두려워했어도 천년을 두고 빛나도록 덕과 영예가 높았다고 전합니다. 또 “네 모습을 조촐하게 하고, 네 말을 어눌하게 하며, 남을 업신여겨 가며 자신을 뽐내지 마라. 네 몸이 ..

[2009.08.20 (목) 맑음] 醉一日則遲一日。醉一月則遲一月。(과음(過飮)에 대한 경계)

醉一日則遲一日。醉一月則遲一月。 취일일즉지일일。취일월즉지일월。 하루를 취하면 하루가 늦어지고, 한 달을 취하면 한 달이 늦어진다. - 정양(鄭瀁),〈자경잠(自警箴)〉《포옹집(抱翁集)》 사실 음주는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기쁨은 더욱 크게 해주고, 슬픔은 잊게 만들어 줍니다. 사람들과는 쉽게 어울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줍니다. 의사들도 혈액 순환을 위해서 한두 잔 정도를 권하기도 합니다. 무엇이든 그렇겠지만, 과도한 것이 문제가 되겠지요. 음주를 경계하는 말들은 동서고금에 많습니다. 그렇지만 정양(鄭瀁, 1600~1668) 선생이 스스로를 경계한 말씀처럼 와 닿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선생은 조선 효종조의 문신으로,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었습니다. 어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외조모 슬하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