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고전의 향기

[2009.10.15 (수) 맑음] 청빈(淸貧), 청부(淸富)

금오귤림원 2009. 10. 15. 16:48
素富貴。行乎富貴。素貧賤。行乎貧賤。
소부귀。행호부귀。소빈천。행호빈천。

부귀한 처지에 있으면 부귀에 걸맞게 행동하고,
빈천한 처지에 있으면 빈천에 걸맞게 행동하라.
- 윤기(尹愭), 〈빈부설(貧富說)〉, 《무명자집(無名子集)》
‘부자아빠 되기’, ‘재테크 전략’ 등 돈 잘 버는 비법을 다루는 책이 쏟아져 나옵니다. 어쩌면 그런 책을 만들어 파는 일 자체가 돈 버는 비법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자본주의의 시대, 돈이 얼마나 많은가가 성공의 잣대가 되고, 돈을 얼마나 잘 벌 수 있는가가 신지식인을 선정하는 기준이 되는 세상이니 그런 것을 탓할 수만은 없겠습니다.

그런데 묘한 건, 이렇게 너도나도 돈을 벌고 싶어 하면서도 정작 돈을 잘 버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리 우호적이지만은 않다는 점입니다. 질투심에서 그러는 것이거나, 아니면 돈을 버는 과정에서 부적절하고 부당한 일들이 간혹(?) 벌어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떤 이가 윤기(尹愭, 1741-1826) 선생을 찾아와 부자는 죄다 나쁜 놈들이라고 비난합니다. 저자가 묻습니다. “부자들이 그토록 나쁘다면, 그대의 가난과 저들의 부(富)를 바꿀 수 있어도 바꾸지 않겠다는 말인가?” “물론 하지 않겠소.” 이에 대한 저자의 일침. “그것은 그대의 실제 마음이 아닐세. 이른바 ‘하지 못하는 것’이지 ‘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네.”

부자가 되는 것을 싫어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다만 부자가 되는 방법과, 된 다음의 처신이 문제가 되겠죠. 저자는 성현을 예로 들면서, ‘부유함 자체는 문제될 게 없다. 다만 부귀한 처지에 있으면 부귀에 걸맞게 행동하고, 빈천한 처지에 있으면 빈천에 걸맞게 행동하여 어딜 가든 스스로 알맞지 않음이 없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하는 것입니다.

흔히 청빈(淸貧)을 예찬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가난 예찬이 아니라 가난한 상태에서도 분수를 지키고 그 처지에 알맞게 사는 태도를 예찬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근검절약과 노력으로 재산을 모으고, 그 재산을 적절하게 베풀 줄 아는 깨끗한 부자, 즉 ‘청부(淸富)’도 마땅히 예찬해야 하지 않을까요?
옮긴이 : 조경구(한국고전번역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