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고전의 향기

[2009.10.08 (목) 맑음] 초라한 나의집

금오귤림원 2009. 10. 8. 23:26
心安身便 孰謂之陋
심안신편 숙위지루

마음이 안정되고 몸이 편안하거늘
그 누가 누추하다 하는가.
- 허균(許筠),〈누실명(陋室銘)〉,《성소부부고(惺所覆瓿稿)》
위 글은 조선 중기의 문인 성소(惺所) 허균(許筠 1569~1618)이 지은〈누실명(陋室銘)〉의 일부입니다.

저자는 해가 들면 밝고 따스한 집에 삽니다. 다른 것은 없더라도 책은 두루 갖추어두고, 차를 따르거나 향을 사르며 천지(天地)와 고금(古今)에 대한 생각에 잠기곤 합니다. 남들은 저런 누추한 집에서 어찌 사나 하겠지만 자신에게는 신선 세계가 따로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음이 안정되고 몸이 편안하거늘 그 누가 누추하다 하는가? 내가 누추하다고 여기는 것은 몸가짐과 명예가 모두 썩은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누추한 집에서 다소 궁핍하게 살아도 마음은 넉넉한 삶을 엮어 갈 수도 있고, 고대광실(高臺廣室)에 없는 것 없이 갖추어 놓고 살아도 늘 무언가 부족해 허덕일 수도 있습니다. 누추한 집이라도 그 집에 사는 사람의 삶의 모습이 아름다우면 신선 세계가 될 수 있지만 고대광실이라도 그 집에 사는 사람의 마음이 욕심으로 가득 차 있다면 그보다 더 답답한 공간은 없을 것입니다.

집이 누추하다 하기 전에 내가 누추한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입니다.
옮긴이 : 하승현(한국고전번역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