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고전의 향기 21

[2009.08.13 (목) 맑음] 夏熱冬寒。四時之常數也。苟反是則爲恠異。 (철모르는 사람들)

夏熱冬寒。四時之常數也。苟反是則爲恠異。 하열동한。사시지상수야。구반시즉위괴이。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것이 사계절의 정상적인 이치니, 만일 이와 반대가 된다면 곧 괴이한 것이다. - 이규보(李奎報),〈괴토실설(壞土室說)〉, 《동문선(東文選)》96권 이규보(1168~1241) 선생이 어느 날 밖에서 돌아와 보니, 아들이 집안에 흙을 파고 무덤 모양의 집을 만들어 놓았더랍니다. 만든 이유를 묻자, “훈훈하여 겨울에 화초나 과일을 저장하기에 좋고, 또 길쌈하는 부인네들의 손이 얼어터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하였다는군요. 아들의 참신하고도 실용적인 발상을 칭찬할 수도 있으련만, 이규보 선생은 오히려 버럭 화를 내면서 그 흙집을 당장 뜯어내라고 야단을 칩니다. “길쌈이란 것도 제 시기가 있는 법인데, ..

[2009.08.06 (목) 맑음] 自上流洗鮮肉 則魚飮腥羶之水 而聞腥羶之臭 ... (상류에서 날고기를 씻으면)

自上流洗鮮肉 則魚飮腥羶之水 而聞腥羶之臭 자상류세선육 즉어음성전지수 이문성전지취 在上流糜亂蓼葉 則魚飮穢惡之水 而聞惡臭 재상류미란료엽 즉어음예악지수 이문악취 상류에서 날고기를 씻으면 물고기는 비린내 나는 물을 마시면서 비린내를 맡고, 상류에서 여뀌 잎이 썩어 문드러지고 있으면 물고기는 더러운 물을 마시면서 악취를 맡는다. - 최한기,〈제취중 순담위최(諸臭中 純澹爲最)〉《기측체의(氣測體義)》 조선 말기의 학자 혜강(惠崗) 최한기(崔漢綺 1803~1877)가 지은 ‘모든 냄새 가운데 맑은 것이 가장 좋다.’는 글의 일부입니다. 이 글은 사람의 감각 가운데 가장 빨리 느끼고 속일 수 없는 것이 후각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물고기가 맑은 물을 마시며 제멋대로 노닐 수 있으려면 물을 맑게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

[2009.07.30 (목) 맑음] 初而不去。中而不覺。終而溺焉。(욕심 때문에 몸을 망치다)

初而不去。中而不覺。終而溺焉。 초이불거。중이불각。종이익언。 처음에는 떠나지 않고, 도중에는 깨닫지 못하고, 결국에는 빠져 죽는다. - 강유선(康惟善),〈주봉설(酒蜂說)〉,《주천유고(舟川遺稿)》 사람의 욕심은 한이 없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욕심을 부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흔히 욕심 많은 인간을 자신의 몸이 타버리는 줄도 모르고 화려한 불꽃을 향해 날아드는 불나비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조선 중기의 문신인 주천(舟川) 강유선(康惟善, 1520~1549) 선생이 술을 마시고 있을 때였습니다. 열린 술 단지에 벌이 한 마리 날아와 술을 빨아먹기 시작했습니다. 선생은 저러다가 빠져 죽겠다 싶어 손을 휘저어 날려 보냈습니다. 그러나 벌은 얼마 못가서 금방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몇 번..

[2009.07.23 (목) 맑음] 逐鹿而不見山。攫金而不見人。 (조금만 눈을 돌리면)

逐鹿而不見山。攫金而不見人。 축록이불견산。확금이불견인。 사슴을 쫓느라 산을 보지 못하고, 금을 움켜잡느라 사람을 보지 못한다. - 이제현(李齊賢), 〈운금루기(雲錦樓記)〉,《익재난고(益齋亂藁)》 많은 사람들이, 도시를 벗어난 전원에서의 한가한 생활을 동경합니다. 도시 생활이 답답하고, 직장 생활이 지겹다면서 늘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어디론가 떠난다고 해서 반드시 한가해지고, 전원에서 생활한다고 해서 과연 마음의 여유가 생겨나는 것일까요? 권겸(權廉)이란 사람이 도성 남쪽의 연못가에 다락을 짓고 운금루(雲錦樓)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 1287~1367) 선생이 초청을 받아 가서 보니 아름답긴 아름다우나, 그곳은 민가가 즐비하고 왕래하는 자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

[2009.07.16 (목) 맑음] 形雖小蜉蝣 毒則倍蚤蝎 (성가신 모기)

形雖小蜉蝣 毒則倍蚤蝎 형수소부유 독즉배조갈 몸은 하루살이만큼 작으나(形雖小蜉蝣), 독은 벼룩이나 전갈의 배나 된다(毒則倍蚤蝎). - 신익상(申翼相), 모기를 읊다[詠蚊], 《성재유고(醒齋遺稿)》 장마가 그치고 무더위가 찾아오면 여름의 불청객 모기들도 때를 만난 듯이 극성을 부릴 것입니다. 모기약도 방충망도 없던 시절에는 모기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가 지금보다 훨씬 더 컸으리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인지 선인(先人)들이 모기를 소재로 지은 재미있는 글들이 많습니다. 위 구절은 성재(醒齋) 신익상(申翼相 1634~1697)이 모기를 소재로 지은 시의 일부입니다. 저자는 이 시에서 사람 못살 게 굴기론 모기에 대적할 게 없다면서 하루살이만한 작은 몸과 가을 터럭 같은 가느다란 주둥이로 살을 쏘아대는데 독이 벼룩..

[2009.07.09 (목) 맑음] 痛勢旣歇。憂慮稍弛。日漸久而心漸安。... (화장실 갈 때와 올 때의 마음)

痛勢旣歇。憂慮稍弛。日漸久而心漸安。 통세기헐。우려초이。일점구이심점안。 則向之所責疾病之原。方藥之失。不復省念。 즉향지소책질병지원。방약지실。불부성념。 통증이 나아 걱정이 조금 덜해지면서 날이 점점 오래되어 마음이 점점 편안해지면, 지난날에 자책하던 질병의 원인과 약이나 처방의 잘못에 대해 더 이상은 생각지 않게 된다. - 이산해(李山海), 《아계유고(鵝溪遺稾)》, 진폐차(陳弊箚) 사람은 누구나 곤경에 처하게 되면 후회를 합니다. “그때는 내가 왜 그랬을까?” “다시는 그런 일이 없게 해야지.” 새 사람으로 거듭나기라도 할 듯이 굳게 다짐을 합니다. 그러나 ‘화장실 갈 때 마음 다르고 나올 때 마음 다르다.’는 속담처럼, 사람의 마음은 그렇지 못한가 봅니다. 시간이 흐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다시 같은 길을 가..

[2009.07.02 (목) 맑음] 知非而不遽改。則其敗己。不啻若木之朽腐不用。(잘못은 빨리 바로 잡아야)

知非而不遽改。則其敗己。不啻若木之朽腐不用。 지비이불거개。즉기패기。불시약목지후부불용。 잘못을 알고서도 바로 고치지 않으면, 그것이 자신을 망치는 정도가 나무가 썩어서 못쓰게 되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 이규보(李奎報),〈이옥설(理屋說)〉,《동국이상국전집》 제21권 저자가 세 칸짜리 집을 수리합니다. 두 칸은 비가 샌 지 오래되었으나 어물어물하다가 손을 대지 못하였고, 한 칸은 이번에 샜기 때문에 이제 한꺼번에 고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수리하려고 집을 뜯어보니 샌 지 오래된 곳은 서까래ㆍ추녀ㆍ기둥ㆍ들보가 모두 썩어서 못쓰게 되어 새로 마련하느라 경비가 많이 들었고, 한 번 밖에 비를 맞지 않은 재목들은 그런대로 완전하여 다시 쓸 수 있었기 때문에 경비가 적게 들었습니다. 저자가 이를 보고 느낀 바..

[2009.06.25 (목) 맑음] 衣錦何榮 抱關何卑 (비단 옷 입는다고 영광될 것이 무엇인가?)

衣錦何榮 抱關何卑 의금하영 포관하비 비단옷 입는다고 영광될 게 뭐며, 문지기 노릇 한다고 비천할 게 뭔가? - 성현(成俔), 《허백당집(虛白堂集)》, 십잠(十箴) 조선 전기의 문인 허백당(虛白堂) 성현(成俔 1439 ~ 1504)의 문집 《허백당집》에 실린 십잠(十箴) 중 ‘부끄러움을 아는 것에 대한 잠[知恥箴]’에 실린 내용입니다. 맹자(孟子)께서는 “사람은 부끄러움이 없어서는 안 된다. 부끄러움이 없는 것을 부끄러워한다면 부끄러워질 일이 없을 것이다.[人不可以無恥 無恥之恥 無恥矣]”라고 하였습니다. 이 밖에도 경전에는 부끄러움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 이 잠(箴)에서 저자는 의(義)를 기준으로 해서 남만 못한 것을 부끄러워해야 행동을 바르게 할 수 있다 하고, 악인(惡人)과 함께하는 것을..

[2009.06.18 (목) 맑음] 薰臭同處。則無薰而有臭。苗不去莠。則有害於嘉穀。(좋은게 좋은것인가?)

薰臭同處。則無薰而有臭。 훈취동처。즉무훈이유취。 苗不去莠。則有害於嘉穀。 묘불거유。즉유해어가곡。 향기와 악취가 한 곳에 있게 되면, 향기는 없고 악취만 있게 되며, 어린 곡식 사이의 잡초를 제거하지 않으면 좋은 곡식에 해가 될 것이다. - 기대승,〈고봉선생논사록(高峯先生論思錄)〉《고봉집(高峯集)》 사람들은 흔히 “좋은 게 좋다.”는 말을 합니다. 두루뭉수리하게 현실과 타협하고자 할 때, 이보다 그럴 듯한 말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태도는 자신의 가치관을 포기하고, 사물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회피하려는 소극적인 것입니다. 그 결과 일시적인 화합, 외면적인 공정성은 담보할 수 있겠지만, 결국에는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 1527~1572) ..

[2009.06.11 (목) 맑음] 有非常之人。然後有非常之事。有非常之事。然後有非常之功。(난세를 구할 영웅)

有非常之人。然後有非常之事。有非常之事。然後有非常之功。 유비상지인。연후유비상지사。유비상지사。연후유비상지공。 비상한 인재가 있어야 비상한 일이 있고, 비상한 일이 있어야 비상한 공이 있다. - 최치원(崔致遠), 《동문선(東文選)》권64,〈서천 나성도기(西川羅城圖記)〉 요즘 우리나라가 위기라고 합니다. 얼마 전에 온 국민이 겪어냈던 큰일을 비롯해서 정치권의 다툼, 노사 갈등, 이념 논쟁 등 나라 안의 문제부터 세계적인 경기 침체나 인플루엔자, 남북 관계 등 나라 밖 사정에 이르기까지 정말 안팎으로 위기는 위기인 듯합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우리나라는 역사상 한 순간도 위기 아닌 때가 없었습니다. 오랜 역사 속에서 수없이 겪어온 시련과 위기는 세계 어느 나라도 유례가 없을 만큼 혹독하고 극심하였습니다. 그렇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