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고전의 향기

[2009.07.23 (목) 맑음] 逐鹿而不見山。攫金而不見人。 (조금만 눈을 돌리면)

금오귤림원 2009. 7. 23. 01:07
逐鹿而不見山。攫金而不見人。
축록이불견산。확금이불견인。

사슴을 쫓느라 산을 보지 못하고,
금을 움켜잡느라 사람을 보지 못한다.
- 이제현(李齊賢), 〈운금루기(雲錦樓記)〉,《익재난고(益齋亂藁)》
많은 사람들이, 도시를 벗어난 전원에서의 한가한 생활을 동경합니다. 도시 생활이 답답하고, 직장 생활이 지겹다면서 늘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어디론가 떠난다고 해서 반드시 한가해지고, 전원에서 생활한다고 해서 과연 마음의 여유가 생겨나는 것일까요?

권겸(權廉)이란 사람이 도성 남쪽의 연못가에 다락을 짓고 운금루(雲錦樓)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 1287~1367) 선생이 초청을 받아 가서 보니 아름답긴 아름다우나, 그곳은 민가가 즐비하고 왕래하는 자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곳이어서, 다락에 앉아 있노라면 민가의 연기 피어오르는 모습, 길가는 사람들의 달리는 모습, 쉬는 모습, 돌아보는 모습, 서로 부르는 모습, 친구를 만나 서서 말하는 모습, 존장을 만나 달려가 절하는 모습 등이 한눈에 다 들어왔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바깥의 사람들에게는 연못만 보이지 그 뒤에 다락이 있는 것까지는 잘 보이지 않았다는군요.

여기서는 세상 사람들의 모습이 다 보이는데 도대체 세상 사람들은 왜 이곳을 보지 못하는 것일까? 저자는 위에서 언급한, ‘사슴을 쫓느라 산을 보지 못하고, 금을 움켜잡느라 사람을 보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명쾌한 진단을 내립니다. ‘마음이 한 곳으로 쏠리면 다른 곳을 볼 겨를이 없는 법, 명예를 조정에서 다투고 이익을 저자에서 다투다 보니, 비록 좋은 경치가 바로 옆에 있어도 이를 아는 사람이 드문 것’이라고.

휴가철이라 전국이 들썩들썩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네 삶에서의 한가함과 여유를 반드시 먼 곳에 가야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도시 안에서도 마음의 눈을 조금만 돌리면 얼마든지 좋은 곳을 찾아내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돈이나 시간’, 혹은 멋진 ‘장소’가 아니라 바로 ‘여유를 즐길 수 있는 마음’ 아니겠습니까? 물론 지금 이 시간에도 폭우의 피해를 복구하느라 여념이 없으신 분들 앞에서는 이런 논의조차도 죄송스럽고 사치스러운 일이겠지만...
옮긴이: 조경구(한국고전번역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