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고전의 향기

[2009.07.09 (목) 맑음] 痛勢旣歇。憂慮稍弛。日漸久而心漸安。... (화장실 갈 때와 올 때의 마음)

금오귤림원 2009. 7. 9. 01:24
痛勢旣歇。憂慮稍弛。日漸久而心漸安。
통세기헐。우려초이。일점구이심점안。

則向之所責疾病之原。方藥之失。不復省念。
즉향지소책질병지원。방약지실。불부성념。

통증이 나아 걱정이 조금 덜해지면서 날이 점점 오래되어 마음이 점점 편안해지면,
지난날에 자책하던 질병의 원인과 약이나 처방의 잘못에 대해 더 이상은 생각지 않게 된다.
- 이산해(李山海), 《아계유고(鵝溪遺稾)》, 진폐차(陳弊箚)
사람은 누구나 곤경에 처하게 되면 후회를 합니다. “그때는 내가 왜 그랬을까?” “다시는 그런 일이 없게 해야지.” 새 사람으로 거듭나기라도 할 듯이 굳게 다짐을 합니다. 그러나 ‘화장실 갈 때 마음 다르고 나올 때 마음 다르다.’는 속담처럼, 사람의 마음은 그렇지 못한가 봅니다. 시간이 흐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다시 같은 길을 가게 되니까요.

그런 면에서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 1539~1609) 선생이 상소에서 든 비유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당시 조정은 임진왜란이 끝난 뒤 다소 안정되자 구태를 답습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심하게 아플 때에는 마음속으로 자책하기를, ‘어떤 때에는 내가 신중하지 못하여, 어떤 일로 내가 다쳤다. 어떤 약은 병에 맞는 약이 아니었고, 어떤 처방은 도로 해로웠다.’ 합니다. 그렇다면 다행히 소생하고 나서는, 그 신중하지 못했던 것을 깊이 후회하고 다시는 다치는 일이 없도록 하며, 해로운 것을 제거하여 반드시 병세에 맞는 약을 구하려고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 통증이 나아 걱정이 조금 덜해지면서 날이 점점 오래되어 마음이 점점 편안해지면, 지난날에 자책하던 질병의 원인과 약이나 처방의 잘못에 대해 더 이상은 생각지 않게 됩니다. 그리하여 편안히 베개를 높이 베고 지내다가 하루아침에 나쁜 기운에 감촉되어 옛날의 병이 재발하기라도 하면 문득 죽음에 이르고 마니, 참으로 슬퍼할 만합니다.”
옮긴이: 권경열(한국고전번역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