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고전의 향기

[2009.06.18 (목) 맑음] 薰臭同處。則無薰而有臭。苗不去莠。則有害於嘉穀。(좋은게 좋은것인가?)

금오귤림원 2009. 6. 18. 12:48
薰臭同處。則無薰而有臭。
훈취동처。즉무훈이유취。

苗不去莠。則有害於嘉穀。
묘불거유。즉유해어가곡。

향기와 악취가 한 곳에 있게 되면, 향기는 없고 악취만 있게 되며,
어린 곡식 사이의 잡초를 제거하지 않으면 좋은 곡식에 해가 될 것이다.
- 기대승,〈고봉선생논사록(高峯先生論思錄)〉《고봉집(高峯集)》
사람들은 흔히 “좋은 게 좋다.”는 말을 합니다. 두루뭉수리하게 현실과 타협하고자 할 때, 이보다 그럴 듯한 말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태도는 자신의 가치관을 포기하고, 사물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회피하려는 소극적인 것입니다. 그 결과 일시적인 화합, 외면적인 공정성은 담보할 수 있겠지만, 결국에는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 1527~1572) 선생은 조선 선조조의 문신이자 학자입니다. 스승인 퇴계 선생(退溪先生)과 사단칠정(四端七情)에 대해 논변한 것으로 잘 알려진 분입니다. 선생이 임금의 공부를 돕는 자리인 경연(經筵)에 참석했을 때였습니다. 마침 소인배들의 득세에 관한 주제로 토론을 하게 되었습니다. 선생은 군자와 소인, 모두에게 공평한 것은 진정으로 공평한 것이 아니라고 역설합니다.

“고식적이고 게으른 사람들은 또 ‘매사에 공평해야만 한다.’고 말하는데, 군자를 후대하고 소인을 박대하는 것이 진정으로 공평한 것입니다. 군자와 소인이 차별이 없다면 이는 크게 공평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어서 그런 도식적인 공평은 오히려 불공평의 단초를 제공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만일 향초와 악초를 한곳에 두면 향기는 없어지고 악취만 있게 되며, 어린 곡식 사이의 잡초를 제거하지 않으면 좋은 곡식에 해가 될 것입니다.”
옮긴이 : 권경열(한국고전번역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