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친구의 세상

[2006.03.22 (수) 맑음] 탐욕으로 이룬 것은 아침의 이슬일세

금오귤림원 2006. 3. 22. 14:29

내 즐겨찾는 나의 고향, 그 곳 [자유로은 이야기] 에 수도승이라는분이 이런글을 올렸다. 참으로 평화로운 분위기와 글 이음의 솜씨가 마음을 정갈하게 하지 않는가! 고마움에 여기 내 별에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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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서 나오는 길에 동행인의 소감은 이랬다. "엄미리(엄밀히) 말하자면 엄미리는 계곡이 아니다" 아침 일찍 서둘긴 여느날과 마찬가지였으나, 막상 갈 곳이 마땅찮다. 충무로로 갈까도 하여보고, 분당으로 갈까도 망설여 보았으나, 자칫 마음이 바뀌면 어디로 갈까나? 동행인의 표정을 살피자니, 조용한 산사에나 다녀 오잔다. 그저께도 용문사엘 다녀 왔는디, 오늘도 왠 산사 타령인가? 일견, 이 사람이 아직도 물 오르는 봄날의 여운이 가시질 않아서 그러나 싶기도 하였으나, 지금의 심정이사, 이 사람(나) 못지  않겠거니 하는 마음에 더욱 채비를 서둘러 길을 나서기로 하였다.

어느날 찾았던 남한산성내에 있는 장경사가 당초 목적지였으나, 하남을 가로질러 광주 방향으로 가다보니 "엄미리 계곡"이라는 이정표가 눈에 띄어 무작정 들어섰다. 녹음으로 잘 어우러진 비포장의 숲속길이 아직은 사람 인적이 드문 한산한 소로였다.

초입에 얼기 설기 폼을 잡는 것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닭매운탕이나 백숙이 전문인 음식점 일색이였고, 조금 더 가자하니 길 바닥이 온통 염소똥이 어질러진 것처럼, 아니면 지나가는 개미떼가 차에 갈려 죽은 모습처럼 험하기 짝이 없다.

자세히 들여다 본즉, 그것은 여느 짐승의 배설물도 아니요, 나들이 나섰다가 비명 횡사를 한 어느 곤충의 무리도 아닌 것이 느티나무만큼이나 커다란 고목에서 떨어진 산뽕나무 열매, 오디였다. 내 어릴적에, 입주댕이 주변이 온통 시퍼렇도록(농익은 풍개만큼이나) 들길을 타며 먹어대던 열매였다.

좌로 꺽어도니 "불교 조개종 천운사"라는 이정표가 보이고, 왼켠으로는 낚시터가 있는 것이, 몇몇이서 얼기 설기 줄을 드리운 채 손 맛의 때를 기다리는 듯 했다. 입구에 들어서자니 이 무슨 해괴한 일이든고! 만개한 밤꽃 내음이 코를 진동하는가 싶더니, 동행인 왈 "아~,저 냄새, 머리 아퍼!" 내 진즉에 그 의미를 알고 있거니, 밤꽃 냄새라는 것이 어쩌면 그리도 "정액과 흡사한 향이든고!" 여자가 결혼하여 평생동안 맡고 사는 것이 저 냄새이거늘, 이곳 저곳 산이라는 것이 온통 그 냄새로세! 

게다가, 당연코 입구를 지켜야 할 사대 천왕은커녕, 부도나 사리탑도 없는 것이 "천운사 주지실"이라는 암자부터 처사를 맞이하는 것이 아닌가? 경내에 들어서서야 그 연유를 알았거니, 아직 잔디도 여물지 않은 채, 듬성 듬성 숲이질 않는가? 멀리 언덕 위로 대웅전이 보이고, 오른 쪽으로는 삼성각이 자리를 하였는데, 그나마 구색은 갖추었네 그랴!

종무실에서 일한다는 아주머니가 "처음이세요?"  "네, 그렇습니다만, 절을 최근에 지은 것 같습니다" "근 일년 남짓 되었습니다. 우선 법당에 들르시고 3시(15시)에 주지 스님의 법회가 있으니  종무실에 오셔서 차나 한잔 하면서 기디리시지요"  그러고 보니 오늘이 보름이구나!

동행인에게 "그냥 장경사로 갈까?" 하였더니, 기왕 온김에 절이나 하고 가잔다. 일순, "그려, 부처가 어디 장소를 정해 놓고 계시든가? 내 마음 속에도 들어 앉아 계실 수 있는 것을!" 주지 스님의 독경 소리를 들으면서 대웅전엘 들어서니, 어라?  절간에 오면 흔히 접할 수 있는 그 내음, 아직 향을 안 피운 걸까? 대신 밤꽃 향이라도 있으니!

빌고 또 빌었다. 나의 "원"은 본래 아홉절에 아홉 원이 있었으니, 한절에는 "아버님의 건강을 비옵니다" 두절에는 "어머님의 건강을 비옵니다"로 시작하여 "장인어른, 장모님, 집사람, 큰아들, 작은 아들"의 건강을 원한 후에 "내주변 모든 이의 건강을 비옵니다" 그러고 나서 나의 건강을 바라는 것이였으나,

근자에 들어서는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느니, 앞을 보고 세절이요, 좌를 보고 세 절이요, 우를 보고도 세 절인데, 한절에는 "죽기전에 나의 짐을 들게 하여 주옵소서" 두절에는 "나보다도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돕게 하여 주옵소서" 세절에는 "부모에게 효도를 하게 하여 주옵소서" 라고 원을 한다. 문을 나서면서 마지막 합장을 하는 것이 "그 셋을 이룰 수 있도록 저의 사업 성취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원을 하긴 하였으나 모든 것은 내 마음이 문제인지라! 댓돌을 내려서는데, 갑자기 뭔가로 뒷통수를 후려 맞는 느낌이 왔다. "탐욕으로 이룬 것은 아침의 이슬일세"라는 달마대사의 훈계가 뇌리를 스치면서 정신이 아뜩하다. 진정으로, 진심으로, 일심의 전력으로 하는 원이 아니라, 내마음 한켠에 자리잡고 있는 "세속의 못마땅함에 대한 분개"가 가미되어 있었다는 생각이 그때서야 든 것이다.

계곡은 물이 잦아든 채 이끼가 끼어 있는 것이 인간들의 무질서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엄미리(엄밀히) 말하자면 엄미리는 계곡이 아니다. 그래도 뒤통수 맞았으니 오늘도 헛되지는 않았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