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엔진톱날 하나를 갈았다. 예전엔 몰랐던 사실 하나.
태풍에 쓰러진 15~20미터 높이의 굵은 삼나무 방풍수를 자르는 것과 사뭇 다르다.
30~40여년정도 되었을까. 과수의 둘레가 그리 굵지 않은 밀감나무의 단단함이 삼나무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과수 50여그루정도 밑둥치까지 잘라내니 벌써 톱날이 무뎌져 새 톱날로 바꿔 끼지 않고는 작업을 진행시키기 어려울 정도.
엔진톱날 1개 15,000원. 적어도 앞으로 2개 정도는 더 갈아야 하지 않을까.
쉼없이 들고 나는 항공기 소음이 차라리 지루함을 견뎌내게 한다.
목말라 물 한 모금, 믹스 커피 한잔에, 비록 흐린 하늘이지만 고개를 드노라면 어김없이 들고 나는 비행기 한 대.
몇 일 지나면, 나 역시 그 비행기에 몸을 싣겠지.
오후 늦게 비가 내리기 시작. 더 이상의 작업을 진행하기 어렵다.
돌아 오는 길. 그리 크지 않은 보리밭의 청초함이 끝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어김없이 거기 한 자락에 갸냘픈 들 꽃들.
빗 방울을 머금은 봄의 생명은 그 생기를 더해 한 층 무르익어 간다.
아직 가지만 앙상한 나무 한 그루 역시,
곧 초록의 신사복으로 갈아 입고 오가는 농부들 마음을 어루만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