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농부의 세상

[2006.09.05 (화) 맑음] 남자와 여자, 그리고 부부

금오귤림원 2006. 9. 5. 22:59
도시 생활이란게...다 그렇잖어?

옆집에 무슨일이 있건 말건...혹여 사람이 죽어 나간다 해도 괜스레 나섰다가 혹시 모를 봉변이 두려워서 함부로 나서지 못하는거....

큰아이의 다급한 목소리가 지하층 스무계단을 단숨에 오르게 한다.

"아빠, 빨리좀 올라와 봐. 옆집에서 큰 싸움이 났나봐. 막 피흘리고 그래."

평시 아이의 침착한 성격을 아는지라, 아이의 다급한 목소리는 순발력에 있어 단연코 자신하는 날렵한 몸매를 날려 사건 현장에 서 있게 했다. 겉으로는 그리 다급하게 보이지 않는 옆집 아주머니는 그저 평범한 모습으로 전화를 걸고 있고, 그를 감싸안은 집사람은 마른 수건으로 그 아주머니의 어깨죽지 부근을 힘껏 누르고 있다.

도대체 무슨일이야? 아이의 다급했던 목소리와는 달리 너무다 일상적인 모습이라 의아해 하면서도 응급조치를 하고 있는 집사람의 모습에서 다소 긴장한다. 전광석화 처럼 빠르게, 어떤 일들을 해야할지에 대해 내 머릿속은 회전을 시작한다.

"칼을 맞았나봐."

그 소리가 머릿속에 전달되기도 전에 이미 내 한 손엔 자동차 키이, 그리고 다른손엔 수화기가 들려 있다. 아 젠장. 요럴땐 경찰서 전화번호도 생각이 안나. 에라 모르겠다. 119. 내 다급한 마음과 달리 느긋한 안내방송에 이어, 그저 그려러니 하는 당직소방관의 목소리가 다급한 마음을 더 부채질 하게 한다. 간단하게 상황설명, 위치 설명, 일단 다친사람은 인근 가까운 병원으로 직접후송하겠으니 경찰서에 연락좀 해 주세요...

자동차 시동을 걸고나니 큰 딸이 아주머니를 부축하고 동승한다. 출발을 하려는데...길을 막고 서는 어느 점잖게 보이는 신사분의 괴성에 가까운 소리와 함께 번뜩이는 칼이 한 손에 들려 있음을 보고서야 사태의 심각성이 어느정도였는지 느꼈다.

큰 딸내미의 손이 문잠금장치로 재빠르게 옮겨지고, 그렇게 자동차와 칼을 쥔 사내와의 일전이 대략 1분여가 지났을까? 어느 용감한 아저씨의 재빠른 몸동작이 험악한 분위기를 제압했다. 그 짧은 순간을 헤치며 자동차는 출발을 하고, 병원 응급실로 내 달렸다.

깊이 찔렸던 모양이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뒷쪽의 어깨죽지 부근이라 생명과 연관되지는 않았지만,

"상처가 상당히 깊습니다. 현재 상태로는 정확히 판단하기가 어렵구요. 엑스선 촬영을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예. 그렇게 하시지요." "보호자 되십니까? 아뇨. 옆집에 사는 사람입니다. 다친 분 신상에 대해서는 아는게 없습니다. 다만 옆집에 사신다는것 밖에....전화 한 통 해도 되겠습니까?"

"예, 핸드폰은 안되고요, 집 전화는 될겁니다. 9번 누르고 사용하세요."

"여기 00 병원 응급실이거든? 거긴어때? 경찰관들은 왔어?" "응, 왔어. 00병원 응급실이라구? 알았어. 여긴 상황 정리되고 있구." "알았어."

"경찰관들이 응급실로 올거랍니다."

그 사이 옆집 아주머니는 환자복으로 갈아 입고 촬영실로 들어 가고, 그 보호자 되는 분이 왔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고맙다는 인사말과 함께 손을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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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지 못한 현장의 몇 몇 동네 아주머니들과 아저씨들이 삼삼오오 모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생명엔 지장 없구요. 조금...상처가 깊답니다. 친가의 보호자 되는 분께서 오셔서 인계하고 오는중입니다."

"에구..강사장님이 애썻네요. 궂은일인데..."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이잖아요. 그나 저나 많이들 놀라셨을텐데..괜찮으세요? 여긴 잘 정리된겁니까?"

"아직도 벌렁 벌렁 합니다. 경찰관들이 왔는데 많이 늦게 왔어요. 그 바람에 그 아저씨가 엄청 고생했죠 뭐. 칼 든 사람을 혼자서 제압하고 있으려니..., 암튼 경찰관들이 와서 사진도 찍고...칼을 소지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 찍었어요."

"암튼, 그정도로 끝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정말 짧았던 순간이었다. 동네 사람들이 인지를 하고부터 대략 10분여 동안의 소용돌이는 그렇게 끝이 나고나니, 그 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섰다. 물웅덩이에 조그만 돌 하나를 던져 넣어도 어느정도까지는 그 파동이 퍼져 나가건만, 어두워 가는 일상은 그렇게, 아무일 없다는 듯이 평범을 되 찾는다. 일을 겪은 몇 몇 사람들만 아직 정리되지 않은 마음을 다독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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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로 산다는거. 그게 도대체 무엇일까. 그래도 연애시절엔 서로가 서로를 애틋하게 그리워하며 살았을터인데..서로 죽이고 싶을만큼 증오의 대상이 되어야 함은 어디서 연유할까. 나이는 무엇일까. 나이를 먹어간다는것과 남자라는것. 그리고 여자라는것. 그것은 또 무엇일까.

사랑과 증오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인가. 사람의 연상능력은 어디까지일까. 숱한 의문들....사실, 사는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이런 쓸데없는 생각들이 오늘 밤 잠 못들게 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