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농부와 독서

라이스 워 (Rice War) - 이완주

금오귤림원 2010. 8. 12. 13:36

이완주 : 충남 당진 생.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및 네덜란드 와겐닝겐 국립 농과대학에서 수학. 서울대학교에서 농학박사 학위 취득. 농촌진흥청에서 33년간 잠업기술 개발에 인생을 바침. 농업과학기술원 잠사곤충부장. 한국잠사학회 회장 역임. 세계식량기구(FAO) 및 한국국제협력단(KOICA) 자문관. [흙을 알아야 농사가 산다], 성인병을 예방하는 뽕잎 건강법], [식물은 지금도 듣고 있다]. 2004년 한국수필 신인상으로 등단. [라이스 워]의 모태가 된 [얘들아, 인제 괴타리를 풀어놓자꾸나]로 2008년 제1회 조선일보 논픽션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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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 1쇄 : 2009년 1월 15일
초판 2쇄 : 2009년 3월 10일

펴낸 곳 : (주)대교출판 - 북스캔
주    소 : 서울특별시 관악구 봉천동 729-21 눈높이보라매센터B1
2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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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아니 당시엔 국민학교였다. 3학년 때였던가? 나로서는 잊혀지지 않는 여 선생님이 계셨다. 그런대로 공부는 했지만,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린시절이라서였을까. 아니, 원체 내성적인 성격때문이었을 것이다. 항상 주눅들어 친구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고 늘 혼자였으며, 어쩌다 어울릴 기회가 있다 싶으면 여학생들과 고무줄 놀이뿐이었다.

그런 내게 선생님은 자신의 시간을 송두리째 내어 [웅변]을 가르치셨다. 옹고집 외골수였던 나는 원고를 외우는것이 너무도 싫어 매 번 선생님께 혼쭐이 났었지만 결국 교 내외 웅변대회를 휩쓸어버리는 결과를 낳곤 했었다. 지금도 성함을 잊지 못하는 용영옥 선생님.

그녀가 어느날인가, 몇 명을 한 조로 하여 강원도 춘천시 우두동 어느 한 켠에 위치해 있던 농촌지도소 견학이라는, 어린 나이의 우리들에게 있어 인솔자 없이 스스로 찾아 과제를 수행하기는 너무도 엄청났던 일이었다. 후일 알게된 사실이지만, 선생님은 별도로 전화를 넣어 아직 어린아이들 스스로 방문 견학을 하도록 과제를 내었으니, 행여 부근에서 망설이는 녀석들이 있으면 불러 견학을 시키도록 조치를 해 놓으셨었다.

아무튼, 우리는 선생님의 예측대로 문앞에서 망설였으며 지도소 직원의 안내를 받았던 기억이 아련하게 되 살아났다. 그래 그 당시 농촌지도소 공무원들은 농사짓는 현장 어디에서건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자신의 논.밭이 아니더라도 그들은 열과 성을 다해 필드에서 온 몸에 흙을 뭍혔으며 온갖 비난과 원망을 받기도 했었던 모습들을 당시 어른들의 말씀을 통해 들었던 기억과 함께...

정말 우연히, 책과의 만남이 다시 시작되었다. 길가 도로에 떨어져 있던 책 한권으로 인해 지금까지 벌써 10여권의 책을 읽었다. 아마도 뒤를 돌아 감사함과 고마움을, 그리고 앞을 향해 보다 더 진지한 삶을 유지하라는 일종의 계시일까?

He who has bread has many problems, but he who has no bread has only one problem.

책을 펴내며 지은이가 일갈한 문장을 보며, 책 전체적인 내용을 어렴풋하게나마 짐작을 할 수 있었다. 사실, 제주농업마이스터대학 2학년 2학기 [경영.마케팅]과목의 과제때문에 한라도서관을 찾았었고, 매 회 3권까지 대출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에 함께 대출했던 책이었다. 물론 책의 존재 자체를 몰랐었으며 [사과나무의 기적]라는 책을 찾으며 그 부근에 있던 이 책의 제목에 관심이 끌려 함께 대출했었다. 당연히 제목으로 인해 곡물관련 국제무역에 대한 내용일것으로 생각했으며 이는 재작년 제주대학교 최고농업경영자과정중 스스로의 과제로 선정하여 조사 연구했었던 나 만의 논문으로 인해 쌓여있던 볼품없는 지식이 바탕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책은 전체적으로 1970년대 "통일벼"의 탄생과정과 당시 농촌진흥청 연구진들의 좌충우돌 애환, 비애, 좌절, 희망 등을 꾸밈없이 전개해 나가고 있다. 자신이 속해 있었고 육종과정에 깊이 관여해 있었으며, 그 결과 역시 대 성공이었음에도 지은이는 철저히 객관적 입장에서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는 점이 나로 하여금 지은이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이는 근 3년여, 농업 문외한인 내가 그래도 비중있는 농업교육과정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현재에 있어 과정 강사들의 과장된 자기자랑에 씁쓸함을 느끼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현재 시점에서 우리는 곡물을 자급할 수 있는가? 사실,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이들 가운데서도 이 문제에 대해 명확하게 답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하물며 일상에 뭍혀 그저 하루 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일반인들이야 오죽하겠는가. 지은이에 따르면, 아직 우리는 곡물의 3/4을 수입해서 먹고 있다고 한다. 아울러 지은이는 "어려움이 닥치면 지금 할 수 있다고 믿는가? 아니면 수입하면 될 거 아니냐고 우기려는가?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 큰 오산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 농촌과 농경지의 실상을 알고 나면 너나 없이 앞이 캄캄해 지리라"라고 일침을 놓고 있다.

러시아에선 폭서와 고온으로 농작물의 수확량이 평년의 1/4정도에 멈추고 있다는 뉴스가 심심찮게 보도되고 있다. 미국 역시 자국민을 먹여살릴 만큼의 곡물을 비축해 놓지 못하고 있으며, 중국도 농산물 수출국에서 수입국으로 변하고 있다. 태국은 곡물 수출을 금지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을 정도이다.

한국의 현대화 과정에서, 특히 "통일벼"는 농촌의 부를 어느정도 축적하도록 하여 내수 소비가 가능케 함으로써 한국의 경공업을 견인할 수 있었다는 작가의 관점에도 동의를 한다.

"포항종합제철(포스코의 전신)은 우리 농업에 빚졌다" 고 측근들에게 실토했던 박태준 회장의 말과 함께 그 빚을 갚기 위해 네덜란드식 유리온실을 지은 후 "포스코가 허허벌판에서 시작해 세계 일류 철강회사로 성장한 것처럼 우리나라 농업을 세계 일류로 변모 시키자." 며 최첨단 유리 온실을 국산화 하여 군 단위에 한 채 정도식 보급하자" 고 제안했던 일이 무산됨이 너무도 아쉽다.

"그래서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 농민의 양극화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세월이 더 흘러 후진국의 농민이 모두 망하고 나면 선진국은 미사일 대신 식량으로 후진국을 좌지우지 하는 날이 올것이다." 라는 지은이의 경고는 섬뜩해지기도 한다.

"농촌진흥청장을 줄반장으로 아는 대통령이 많았어요." 역대 청장의 재임기간이 당시 김인환 청정의 12년 1개월을 제외하고는 2~3년, 기껏해야 5년정도가 그 재임기간이었다. 전문가가 될 수 없음을, 고위직 공무원은 대통령의 입맛에 따라 경력쌓는 자리로 전락해버렸음을 개탄하는 말이리라.

농업, 우리는 삶을 위하여 그것이 필요하다.
1. 농업은 우리의 식량을 보장한다.
2. 농업은 우리 국민사업의 기반이 된다.
3. 농업은 국민의 가계비 부담을 줄여준다.
4. 농업은 우리의 문화 경관을 보존시켜준다.
5. 농업은 마을과 농촌 공간을 유지한다.
6. 농업은 환경을 책임감 있게 다룬다.
7. 농업은 국민의 휴양 공간을 만들어준다.
8. 농업은 값비싼 공업 원료 작물을 생산한다.
9. 농업은 에너지 문제 해결에 기여한다.
10. 농업은 흥미로운 직종을 제공한다.

어린 아이때부터 농업의 역할을 이해 시키고 있는, 농업이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역할뿐만 아니라 국토와 문화를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강조해, 국민이 농업과 농촌을 보호해야 한다고 하는 독일 연방정부의 농업에 대한 철학이다.

우리 밥솥 어떻게 지키나? 라는 제하의 마지막 장에서 지은이는 네덜란드의 농업을 예를 들어 연구소의 역할과 연구원의 전문가화를 강조한다. 그리고

연구원들을 전투기 조종사처럼 귀하게 키우고는 무엇이 될 때까지 놓아두어야만 비로소 전문가가 될 수 있다. 녹색혁명을 일으킨 통일벼는 이런 연구자와 연구소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행정력이나 행정가가 기술자, 전문가를 좌지우지하는 나라는 농업뿐 아니라 그 어떤 분야에서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라는 말로 마무리 하고 있다.

내 일생동안, 잠시도 잊지 않고 되새겨온 말이기도 하다. 아무런 힘이 없어 대갈일성하지 못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