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농부의 세상

2017.03.09 (목) 맑음. 금오7기 수원입성(S전자 재직) 30주년 기념행사 초청

금오귤림원 2017. 4. 20. 04:03

2017.03.09 (목) 맑음. 금오7기 수원입성(S전자 재직) 30주년 기념행사 초청


1979년 2월 경상북도 구미시 공단동 111번지.
17살 어린 전국의 시골소년들이 그 곳에 모였었습니다. 
 
보통은 "교정"이라고 하죠. 웬걸요. 지금 생각해 보면, 지방의 웬만한 대학도 따라오기 어려울 정도의 "캠퍼스"를 바라보며 놀랐던 기억과 알 수 없는 자부심을 가졌었습니다. 입학식을 치르기전, 전원 기숙사생활을 해야 했던 소년들에게 가장 먼저 지급되었던 군용 초도보급품... 
 
이틀이었던가요? 기초 군사훈련을 마친 후 그들은 비로소 입학식을 거쳐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왼쪽 어깨의 "조국 근대화의 기수" 어깨휘장과, 그리고 아직은 전공마크를 달 수 없어 1학년을 의미하는 "1" 마크만 달고 학과출장(학교등교)을 했던 기억들... 새롭습니다. 
 
1990년대 초반, 우리나라 대학에 학부제가 도입되었었습니다.
전공선택과 관련된 어쩌면 새로운 제도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보다 약 20여년 앞서 그 곳에는 학부제 비슷한 교육시스템이 있었습니다. 
 
소년들은 선배들과는 달리 "전공마크"를 달 수 없었습니다. 학교에 설치되었던 전공학과 모두에 대한 기초이론과 실습을 이수해야 했으니까요. 
 
전자과가 전공이었던 제가 기계공작, 금속공학, 전자공학, 판금용접 등 학교에 설치된 4개 전공과목 모두의 기초이론과 실습 과정을 이수하고 나서야 비로소 제 전공인 "전자"마크를 달 수 있었습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죠. 
 
2학년들어 1학기동안은 전자과안에서도 다시 "전자기기", "무선통신", "R/TV(라디오/텔레비젼)", "자동제어"에 대한 기초이론과 실습을 이수해야 했고, 2학년 2학기들어서야 비로소 제 주전공(자동제어)이 결정되었고 1년 반 정도 심층학습과 실습을 거쳐 졸업을 했습니다. 
 
학교내에 설치된 5관구 사령부 예하 301학군단에서 주당 2시간의 군사학도 이수해야 했고, 하계방학동안은 안동 36사단에서 병영훈련, 그리고 3학년 여름방학은 육.해.공군으로 흩어져 마지막 병영훈련을 이수해야 했습니다. 
 
어울리지 않는 군복위 계급장은 1학년, 흰색 하후생 계급장에서 2학년 파랑을 거쳐 3학년이 되어서야 비로서 단풍하사 계급장을 달 수 있었던, 그 아득한 세월도 기억에 새롭습니다. 
 
졸업과 동시에 소년들은 대한민국 육.해.공군 예비역 하사관으로 임용이 되었고 곧바로 소집명령을 받아 현역(소집된 예비역 신분)으로 입대를 했습니다. 60개월동안 군 복무를 마치면서 청년으로 자란 소년들은 어김없이 모교로 다시 모여 들었습니다. 
 
3년간의 학교생활동안 소년들은 엔지니어로서의 자질을 뼛속 깊숙히, 완벽하게 다졌습니다. 
 
5년간의 군 생활동안, 당시로선 최신 무기체계의 정비 운용과정을 거치면서, 군 기술현대화의 최 선봉에 서기도 했습니다. 장비가 도입되면 그의 유지관리 및 정비와 관련된 매뉴얼과 측정장비 또한 도입이 되기 마련이었지만, 능수 능란하게 다룰 수 있었던 유일한 기술인력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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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에서 입영, 전역(소집해제)을 하면서 청년으로 자란 동기생들은 누가 뭐랄것도 없이 학교교정에 모여 들었고. 그 곳에서 상당수의 동기생들은 S전자에서 준비해 둔 입사지원서를 작성, 새로운 사회생활을 시작하기도 했었습니다. 
 
제 기억으론, 수원시 전역에 선배, 동기, 후배들이 가득했었던것으로 기억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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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30주년! 
 
수 많았던 동기생들중 지금까지 남아 있는 인원이 9명 정도라고 합니다. 그 친구들이 기념을 하고 싶다고, 멀리 제주에서 살고 있는 그저 평범한 농부를 초대했습니다. 
 
가슴이 벅찹니다. 
 
어쩌면, 대수롭지 않은 일일지 모릅니다. 38년여전의 이야기를 이리 장황하게 나열해 가며 흥분할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장구한 세월을 "돈.키.호.테"로 살아온 제게 있어선 그 어떤 자리보다 뜻 있는 기념일이기에 가슴이 벅차오를 정도랍니다. 
 
왜.냐.구.요. 
 
오늘날의 S전자는 이미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1958년 GS 설립, 1969년 S전자 창립.
이미 전자업계에서는 GS가 단연코 우위였기에 더욱 더 흥분이 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후발업체인 S전자의, "우수기술.기능인력 확보전략"은 설계와 생산, QC, 개발 등 모든 과정에서, 소년시절부터 뼛속 깊숙히 몸에 밴 엔지니어 정신으로 무장한 그 청년들을 흡수하며 탄탄대로 급속한 성장을 이룬 반면, 선발업체인 GS는 그 선두자리를 S전자에 내어 주는 결과를 냈기 때문입니다. 
 
만.일.에 말입니다. 
 
S전자의 인력확보전략을 GS에서 먼저 했었다면...
어떤 결과가 현재를 이끌고 있을까요. 
 
가히. "돈.키.호.테"식 발상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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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중한 친구들에게 오랜세월동안 간직해 둔 내 고마움을 전해주러 다녀와야할 것 같습니다. 그 고마움의 표시가 그들에게 작지만 큰 위로가 되어 줄 수 있다면 그 보다 더 큰 기쁨은 아마도 없을 듯 싶네요. 
 
사랑한다 친구들아! 
 
그대들은 진정. 대한민국! 조국 근대화의 기수였음을 기억하자.
남은 생애가 얼마가 되었던, 정년퇴직이 얼마나 남았던, 
 
그대들의 그 초인적 인내와 월등한 기술력! 무한한 책임감은 결코 조국 대한민국이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설 수 있게 된 원동력이었음을 
 
가.슴.에 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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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 같아서는 이 편지를 S전자 최고 경영진에게 보내 그대들의 수고에 더한 위로를 전하고 싶지만, 아무래도 그들의 마인드안에 그대들이 있을지 의문이 들어 몇 번을 망설이다 그만 두네. 진정한 경영인이라면, 알아서들 하시겠지 모. 
 
내일 오후 7시. 그래 수원 동해바다에서 보세.
초청해 주어 정말 고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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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9일 (목) 제주에서 친구 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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