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농부의 세상

[2011.07.24 (일) 맑음] 감물염색..... 그 느림의 미학(?)

금오귤림원 2011. 7. 29. 13:10
제주의 야생초와 야생화에 큰 관심을 갖게 된 때는 이미 오랬다. 7년여전, 정말 우연히 농사를 짓게 되면서부터, 사는 곳으로부터 근 1시간여 걸리는 과수원을 오가며 인근의 오름을 오르면서 어느 날부터 눈에 들어오는 야생화, 야생초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니...

천연농약의 제조가 우선의 목표였지만, 조금씩 공부를 하다보니 약용이며 기능성, 색료, 향료 등 제주자연은 보고중의 보고였다.

우선 이미 일상화되어 있지만, 점차 사라져 가고 있는 "감물"염색을 통해 선조 선배들의 경험을 익히고자 했다.

작년 초, 한라대학 평생교육원 천연염색과정. 옆지기를 구슬러 등록을 시켰는데, 다행히 관심을 갖고 성실히 수료까지 하더니 올해는 근로복지회관 재봉과정까지 이수하면서, 인근에서 대량의 원단을 생산하고있는 갈옷 염색집까지 사귀어 이렇듯 첫 작품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시 내년쯤. 오름을 오르기 시작해야할 듯 싶다. 물론 그 때즈음이면 괜찮은 카메라 한 대 마련도 될 터이고.... 초라한 연구실이라도 생겼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 하더라도 천연농약과 천연염료 등에 대해 어설픈 연구작업도 시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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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일년여, 감물 염색과정을 익히고 나서의 첫 작품이다. 옆지기 스스로, 누구의 도움없이 혼자 이룬 쾌거(?).

균일한 색상을 위해 잘 다듬어진 제주잔듸는 어쩜 필수요소이다. 이 역시 제주자연만이 갖는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쉬이 정감이 가지 않는 색상. 초벌마름(건조)이 끝난 후의 색감은 선듯 마음에 다가오지 않는다. 다시금 맑은 물에 담가 설렁 헹구고, 제주의 따가운 햇살에 말리는 과정을 반복하다보면 조금씩 그 색상이 진해지기 시작한다.

행여 마르는 과정중에 빗물이라도 후두둑 떨어질라 치면, 바닥의 잔듸와 닿은 면엔 사람이 그려내지 못하는 행복한 무늬가 그려진다. 자연이 디자인한 무늬. 세상 어디에도 없는 오로지 하나뿐인 디자인의 원단이 만들어질 수도 있는것이다.

느림의 미학(?) 이라고 했던가? 하나 하나 과정 과정속엔 참으로 많은 이야기들이 내재되어 있다. 결코 순식간에 뚝딱하니 만들어낸, 이야기 없는 직물들은 끼어들 틈이 없음은 물론이다. 사람의 정성은 차치하고라도 자연의 숨결이, 그것도 제주의 맑고 상쾌한 숨결이 배어든 제주감물원단은 참으로 다양한 원료로 사용될 수 있다.

선조들의 빈틈없는 기술을 바탕으로 그에 현대화된 기술들을 조화롭게 더해 간다면 최상의 의상재료로서 손색이 없으리라.

오랜시간을 필요로하는 "기본"은 어디 감물염색에만 적용이 될까. 세상 모든 곳에 그 충실한 "기본"은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따르는 법이다. "기본"이 충실하다면, 그 위에 더해지는 다양한 작업들이 보다 수월해질것이며 보다 더 사람들의 마음을 만족시킬 수 있지 않을까.....

폿감! 너무 떫어 먹기는 그렇지만, 섬유 원단의 염색용으로는 그만이다. 하긴, 인견까지도 염색을 해 낸다.

탁구공보다 조금 큰 상태에서 수확을 하여 믹서를 이용 통채로 갈아낸 후 그 즙액을 이용하여 원단을 염색한다. 옛날 선조들께서는 절구 등을 이용하여 으깬 후, 갈린 폿감 그대로에 원단을 넣어 염색을 하곤 했었는데 요즘은 균일한 색상을 내기 위해서일까? 추시를 제거한 즙액만으로 염색을 하곤 한다.

염색과정을 마친 원단은 마치 모시옷감에 풀을 입힌듯한 그런 느낌을 갖게 한다. 아마도 폿감 특유의 점액질때문이리라.

여름철, 눅눅해지기 쉽상인 일상의 섬유제품들. 감물 염색을 마치고나면 그런 눅눅하고 칙칙한 느낌을 주지 않고 오랫동안 시원하고 쾌적함을 느끼게 한다. 특히나 홑이불이나 내의용이라면, 땀과 습기로 인해 피부에 달라 붙기 쉽상이지만, 염색이 끝난것들은 그렇지 않아 더욱 쾌적한 여름을 보낼 수 있다.

이런 특징들이 아마도 제주의 험한 밭농사 노동복으로 인기를 끌었는지 모른다. 이만큼 실용적이고 건강한 옷이 또 있을까.

근래들어, 획일적인 색상의 갈옷에 화려한 수수함이 더해지고 있다. 여러가지 천연염료들이 개발이되어 황토색 감물을 기본으로 다양한 색채들로 변신을 꾀하고 있음은, 기존의 쾌적함과 실용적, 건강함에 더해 아름다움과 푸근함, 그리고 멋스러운 삶을 꾸며주기도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