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농부의 세상

여행.....1

금오귤림원 2006. 6. 12. 23:04

갈까...말까...
마무리를 해야 할 일을 벌써...넉 달째 미루고 있다.
먹고 사는일이 무에 그리 중하다고...아니 중하긴 하지.
스스로를 합리화 하면...그럼 마음이 조금 편할까? 그래 아마 조금은 편할꺼야....

사실은 게으름에, 막상 일을 시작하면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그렇게 일사천리로 처리해 버리는 성격이지만, 그 발동이 사뭇 느려터져버린 그런 게으름뱅이기에 미루고 또 미룬 일이다.

그나마 조금씩 조금씩 메모해 둔 내용들은 있지만, 마음에 차지 않는다. 조걸 어떻게든 완벽하게 구성하고 정리해서 브리핑까지 해야 승질에 맞는데.....

그 일의 마무리와, 마침 전해진 친구의 결혼소식, 그리구 첫 만남을 위한 호출....거기에 기계장비의 교환이란 일까지...그렇게 4가지일이 결국 물건너 여행을 하기위한 구실을 만든다.

토요일 새벽에서야 그래 가자!
그렇게 결정을 하니 항공편 좌석이 없다.

가지말자.

"공항에 나가면 대기표 한 장이야 있잖아. 이유없어. 무조건 와!"

주섬 주섬. 서류가방에 양말 한 켤레, 교환할 장비, 치솔, 비누, 간이샴푸...
아! 고사리 한 줌, 쑥찻잎 한 줌!

"마누라 나 공항까지좀 데려다 줘!"
"갈꺼야? 알았어!"

한성항공.
"혹시...항공기 좌석...대기표라도...있나요?"
"어쩌구 저쩌구....첫 항공편은 출발했구요. 다음편은 9시인데...아마 한 두편은 있을겁니다."
"예? 7시 15분이 아니구요?"
"6시 50분이거든요?"

왈가왈부할 필요 있나? 이미 떠났는데....(어? 내가 참 많이 변하긴 했나보다. 물러설 줄 알다니..)

아시아나.
"대기표....어쩌구....제주민...20% 할인......"

김포에 사는 여동생집에 들러 커피한잔.
교환장비 위한 전화....토요일이라 근무하지 않는모양이다. 전활 받지 않네....

멀다. 넉 달간 미룬일을 위해 이동할 거리가....
결국 약속시간을 거의 한 시간이나 어겨 만났다.

그리 깊은 인연도 아니다. 적어도 내게 있어 만남이 잦았던일도 없고...
그런데 딱히 뚜렷한 이유도 없이 그저 마음으로 느껴지는...그런 고마움이 있어
준비한 고사리 한 줌, 그리고 쑥찻잎을 내밀었다.

원만한 마무리....
이로 인해 내겐...다시 희망이 생겼다. 서류작업. 그 게으름을 해결하는 일, 그 숙제와 함께...
그저 할 수 있는 일이 고맙습니다. 그것밖에 없다.

"밥 사주라. 니 밥 사주기로 했잖아."
"그러지 말구...바로 이동해라. 거기서 가깝거든?"
"알써"

추적하니 비가 내린다. 바람도 웬만큼 불구..."
중화역에서 택시를 잡아 타니....친절하신 아주머니 운전기사...
애써 식장까지 찾아 주신다.

25년 순애보...
대중이 반가운 얼굴로 맞아준다. 이내 택진도 보이고....
그 앳되어 보이던 얼굴에도 중년의 깊이가 서리기 시작한다.
그의 가슴 뜨거움이 못내 얼굴에까지 피고 있음일까.

신랑을 찾으니...그는 없고 신부 대기실에서의 신부가 화사한 웃음으로 맞는다.

"제주....혹시....", "예. 원시인입니다...", 어머 세상에...."
그렇게 먼저 인사가 되어 버렸다. "이구이구...원신을 알아 주시구...ㅎㅎ. 감사..."

학창시절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친구도 보인다.
그 초코파이로 인해...그는 아마 기억에서 지워질 일이 없는 친구...
내겐 그렇게 남아 있는 친구지만, 그는 기억이나 할까.

식장엔...잔잔한 음악이 흐른다. 그리고 크고 하얀 도화지 위에선 신랑 신부의 어린시절에서부터 지금까지의 세월이 애잔한 추억으로 스치듯 지나간다.
신랑의 독백서약이 스스로의 낭독으로 이어지더니 신부 역시 그렇게 화답서약을 한다.
머흔 넷에야 이룬 그 아름다운 사랑이 거친 친구의 숨결을 저렇듯 평온한 웃음으로 변하게 하는가 보다.

삼무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다시금 친구들과 신랑 신부를 한 자리에 모이게끔 한다.
샴페인 한 잔에 마음을 담아 부디 행복하기를, 부디 잘 살기를....건.배.

친구들 배웅을 뒤로하며 신탄진행 열차를 탔다. 9시 25분.
항공기 아나운싱과 사뭇 닮았다. 세상이 변하는 모습이 참으로 서운하다.
"열차내에서는 모든 구역이 금연입니다. 핸드폰은 끄거나 진동으로 해 주시고, 대화시에는 조용한 목소리로 대화하시어 주변 다른이들이 불편을 느끼지 않게 해 주십시오....어쩌구 저쩌구..."

참으로 재미없는 세상이다. 때론 편리함보다 마음이 푸근해짐이 훨씬 좋을터인데....

지난 세월속의 열차여행은....부담없이 나누는 말과 마음이 왁자찌걸하니 열차안을 후끈 달아오르게 했었다. 그 속에 피곤한 삶이며 지쳐버린 삶이며, 오랜세월의 고생속에 모처럼 찾은 여유로운 삶이며, 싱싱한 젊음의 삶이며, 지긋하게 연로하신 대중적 철학이 녹아 있어 그를 음미하고 나누는 그런 재미가 있었다. 그게 없다. 남은것은 개인의 편리함을 좆는 에고이즘뿐...

그렇게 신탄진역에 닿았다.

11시 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