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농부의 세상

내 작은 일상 중 하나...

금오귤림원 2005. 11. 16. 16:46

큰 딸 진학 문제로 담임선생님으로부터 한 번 뵙자는 연락이 왔다.

속된 말로 딸랑이...ㅎㅎ.

사실 난 아이들 고등학교 진학문제에 대해서는 시세의 그런 큰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

인문계면 어떻고 실업계면 어때?

물론 당대 국내 최고수준의 왕립학교라고는 하지만, 나 역시 공고출신이기에 어떻든 괜찮다는 주의다. 공부는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과 준비안된 마음가짐 상태에서의 훈육적 강제함은 오히려 성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 몸과 마음이 성장해 가면서 주변을 인식하고 스스로 필요성을 인지할 때 쯤이면, 서너 밤 쯤 너끈히 새워 책과 씨름할 수 있는것이 바로 사람이라고 굳게 믿고 있음이 그 이유다.

기실,

중학교 1-2학년때의 큰 딸의 모습은 참 보기 좋았다.

물론 학교 성적은 중간정도에서 오르락 내리락 했지만, 성격 좋고 밝은 주변 친구들과의 스스럼 없는 어울림과 부드러운 성격은 내 칼 같은 성격과 대조될 정도로 좋아서 공부 보다는 뛰어 놀라고 오히려 내가 권했었다.

3학년 들어 주변의 친구들이 하나 둘 학원과 과외로 빠져 나가면서 큰 딸은 홀로 자연스레 외톨이가 되어가는 모습은 그래도 참을 만 했는데...

어느 날 부턴가, 집으로 데리고 오는 아이들의 눈 빛과 행동들이 썩 마음에 들지 않게 되면서

난 다시 마음을 먹게 되었는데...

결국 2학기들어서야 아이를 학원에 등록시켰다. 공부도 공부지만, 가깝게 지내던 아이들과의 관계유지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

아이는 잘 적응해 주었다. 잠시지만, 성적도 조금 오른것 같았고...

그 이 후, 아이는 눈에 띄게 열심히 공부를 시작했다. 흔한 말로 늦게 발동걸린다고 했던가?

모의고사와 중간고사, 그리고 기말 고사 성적은 그리 크게 향상되지는 않았지만,

이 녀석 스스로 해야겠다고 마음다짐하는 모습은 아빠를 충분히 감동시켰는데....

"혹시 마음이 바뀌지는 않으셨습니까?"

"아뇨. 한 참 꿈을 꾸고,실패건 성공이건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할 나이에, 오로지 둘 중의 하나만 선택하도록 틀을 짜버린 이놈의 제도와 극성이 많이도 답답하지만, 전 그렇습니다. 혹여 실패하여 일년을 쉬어 간다해도 아이에게 도전의식을 심어주고 싶습니다. 물론 최종결정은 아이 스스로 하겠지만, 아빠로서는 실패를 두려워 하지 말고 도전해 주었으면 싶네요."

"작년의 경우에는 이 성적으로도 인문계 진학을 했습니다. 물론 해 마다 상황은 다르지만..하지만 담임 입장에서는 보다 안정적인 면을 고려해 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아이들 생각은 어른들 만큼 그렇게 야무지고 단단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담임선생님 말씀이 참으로 고맙습니다. 그리고 충분히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실업계로 진학한다해서 대학진학을 못하는 것도 아니고, 제주시 지역이 아니라도 후일 전학문제 등을 고려해 볼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아이의 그 야무지지 못하고 단단하지 못한 그 면을 세워 선택의 기로에서 어떤 결정은 해야 하는것이고 그 결정에 따른 책임은 그 누구도 아닌 스스로에게 있다는점을 가르치고 싶습니다. 어쩜 선택을 결정해야하는 나이가 너무도 어린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어쩜 이 선택이 아이의 장래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선택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책임은 제가 질 것입니다.

"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크게 염려하시지는 않으셔도 될 듯 싶네요. 4-5문제 정도 더 얻을 수 있으면 안정적입니다. 아직 조금의 시간이 남아 있으니 더욱 분발하도록 지도해 주십시요."

"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요 몇 일전 부터 아이 스스로 학원을 중단하고 독서실에서 정리를 좀 하겠다고 하더군요. 그 때 전 참으로 기뻤습니다. 스스로의 상태를 잘 체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죠. 자신의 상태를 자신이 체크할 수 있고, 그에 따른 적절한 대처방법을 역시 스스로 만들수 있다니 대견하더군요. 선생님께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아이들의 분발을 독려하기 위해 다소의 꾸지람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꾸지람 보다는 격려의 한 말씀이 더욱 힘이 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부디 약간의 잘못이 있더라도 격려해 주셨으면 합니다."

"물론이지요. 아버님 생각이 참으로 좋습니다. 저희들고 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남은 기간 최선을 다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저희역시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학부모입장에서 학교를 방문했다. 난 생 처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