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발 대전행 우등열차를 타려하니,
좌석이 없어 입석이라네.
잠시 잠깐의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내 내 두툼한 손 안쪽엔 6,300원 승차권.
플랫폼으로 들어섰다.
옛날 옛적 뭇 시인들의 그 흔하던 소재거리
플랫폼......
어디에서도 그 정감은 찾아 볼 수 없고,
그저 시끄런 디젤엔진 소음과
번잡한 도심인파의 허우적거림, 땡볕, 지열...
등줄기엔 한줄기 뜨거운 시내가 흐르고..
아! 세월이 흘렀나?
아! 세상이 변했나?
아! 내가 변했나?
어쩔수 없이 촌놈인줄 이제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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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내 열차는 서서히 움직이고,
엥? 왜 이리 느려!
체감속도 60Km/h....
아구 난 죽었다.
대충 2시간 거리라 들어, 서서감에 무리없다.
웬걸.
출발하고 10여분여...발바닥이 뜨거워짐은 어쩌지 못한다.
이리 꼬았다, 저리 꼬았다.
그래도 핵교 댕길때는 좋았는데.
그저 눈치없이 팔걸이에 털썩, 바닥도 좋다. 신문지 한 장이면..
이거, 어디 한 곳 그리 무겁지 않은 육신 맡겨 놓을 곳 마땅치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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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구미다. 한 껏 일부러 허리 구부려,
차창밖을 바라보니, 먼저 눈에 띄는건....[공과대학]이구나.
그 너머로 그 잊지 못할 [굴뚝]이 먼저 보이고, 그리고 본관건물...
구미역에서..
몇 몇 사람들이 내린다. 그리고 내 앞에 나타난 빈 좌석 두 개.
"어쩌까나...앉아 버릴까!, 개겨?"
맘 속에선..그 못난 자존심이 계속 뻐팅긴다....에구 촌놈아.
내 옆에 있던, 어떤 젊은 총각.
서서히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야말로 전광석화...
일촌광음이다. 어느사이 그 친군 좌석을 차지하고, 난..천천히,
미끄러지듯 슬며시 옆자리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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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여보쇼!"
굵직하나 그러나 힘없어 보이는 목소리에...놀란듯 눈을 뜨니,
촌로 부부인듯..화나신 모습이다.
화들짝 놀라 일어서니, 오히려 그 촌로 미안한 듯, 뭐라 뭐라
하시면서, 손바닥으로 팔걸이를 탁탁 치신다.
"젊은이 미안하오. 여기라도 앉아 가시구려"
"아닙니다. 어르신, 편안하게 가십시요. 고맙습니다."
김천이란다. 그래..한 번도 가보진 못했지만, [직지사]가 있는동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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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보니 나이쫌 들어보이는데..
꼼짝않고 서서 가는 이 촌놈이 애처러웠나 보다.
이 원시인..험악하기로는 한 얼굴 한다는 사실은 나도 알지만,
이 원시인..얼굴로는 40 중반을 훨씬 넘길 수 있다는 사실, 나도 알지만,
이제쯤 조금 여유가 생겨 부부동반 여행을 하시는 듯.
그 부인께서..손짓을 하신다. 신문 한 뭉치 건네시는 듯..
바닥에 펼쳐 편히 앉아 가시라는 말씀인 듯!
아! 희망이 보인다.
.
.
.
자존심? 체면?...이 아니라...
내 얼굴에 대한 희망이다.
요즘 세상에...이 험한 얼굴을 향해,
저 따뜻한 손길과 마음 써 주심이...
"감사합니다..그렇지만, 괜찮습니다. 고맙습니다."
정중히 물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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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역을 지났다.
다시금 사람들이 움직이고...
앞을 보니..좌석이 여럿 남아 있네?
전광석화? 를 생각하면서도..
이내...그 못난 자존심이 발동한다.
이래 저래..머릿속이 복잡해진 사이...
에구..대부분의 좌석이 없어져 버렸다.
에구 멍청이...ㅋㅋㅋ
자 자기 합리화를 시작해야지..
아마도..저 들은 자기들 좌석일것이다.
그런데...인정하기 힘들다. 그들이 좌석에 앉는 모습을 보면..
그 들도 내와 같은...에구 치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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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인지 기관사인지...
굵직한 목소리의 차내 방송이
대전역에 도착했음을 알린다.
다시금 사람들은 바삐 움직이고,
잠시지만, 소란스러움이 가시고..
아까 그 넉넉하신 아줌마...
바로 앞에 나타난 빈 좌석을 툭툭 두드리며..
다시금 눈길을 주신다.
그 옆에..손을 꼬옥 쥐신채 잠드신 짝지는
놔두고..어찌 내게 눈길을 주시는지...
착각이라도 좋다..ㅋㅋㅋ
"마음 써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전 여기서 내릴겁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미련을 두지 말자. ㅋㅋㅋ
그저..편안한 여행을 마무리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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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변했는지...내가 변했는지...아직도 나는 헤매고 있다.
비록 짧았지만, 그리고 발바닥이 뜨거워지는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지만, 마음만은 흐뭇하다.
이제야 잠깐의 여유가 있으신듯, 두 분 모두 고생의 흔적이
보이는 데...두 손 꼬옥잡고 함께 앉아 여행하시던 그 두 분의
중년 부부의 모습과 더불어, 그 넉넉하신 마음쓰심을
내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어
그래서 흐뭇하다.
아! 이 작은 행복이여.
어찌 돈으로 이 기쁨을 살 수 있을까!
^_^*
2001 / 7 /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