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농부의 세상

난, 난 당신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금오귤림원 2005. 6. 12. 02:08
노무현 !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당선자께.

난, 난 당신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고요.

노란색 일색의 군중심리가 싫고...
말은 민주주의를 외치는 이 땅 대한민국에서, 95%가 넘는 몇 몇 지역의 투표율과 지지율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싫습니다.

그래도 한 때는, 이나라 수재중의 수재라 일컬음 받았던 제가, 좋아하기도 하거니와 생활 수단으로 삼아 하던일을 접고, 철가방을 스쿠터에 싣고 배달을 해야 하도록 내 팽개쳐버린 이 나라 정치가들의 무책임과 반인륜적 행태속에 몸담은 당신이 그 토록 싫습니다.

년봉 2-3천에서 5천 이상의 소득자와, 한달 빠듯 65만원여를 벌어 네가족의 생계를 꾸려야 하는 사람들간에, 평균의 원칙을 적용하려하는 당신의 주변이 그토록 저주스럽기 한이 없습니다.

퍼센테이지의 함정속에서 저주받은 삶을 살아야 하는 저소득층들의 자존심은 국가정책기관으로부터 이미 짓밟힐대로 짓밟혀, 관심조차 받지 못하는 사이, 그나마 얼마 안되는 소득의 상당액은 국가정책이 그렇고, 법이 그러니 어쩔 수 없다는식의 말만 반복하는, 정말 앵무새보다 더할 정도로 반복만하는 일선 행정기관이나 관계기관의 별 볼일 없는 사람들에 의해 이미 강탈의 대상이 된지 오래인데, 그 들을 나몰라라 하는 당신 주변이 그토록 저주스럽기 한이 없습니다.

과거의 투쟁경력이 오늘의 현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에 얽매여 마치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한 철학없는 마구잡이식 정책속에서, 정직하고 성실한자 더욱 절망감을 느끼고, 상대적으로 비굴한자, 야비한자 더욱 설쳐대는 그런 세상으로 변모하게 만든 당신 주변이 그렇게도 미울 수가 없습니다.

난, 난 희망을 보고 있습니다.

월드컵 4강의 신화를 이끈 우리 젊은이들의 단아함과 패기와 정직함에서,
여중생 사망 추모집회에서 보여준 우리 젊은이들의 인간적 아름다움과 주권의식에서,
불과 몇 달 사이에,
반 만년의 역사를 이어온 그 철밥통 정치권력의 난장판을,
단 세 번의 고비를 넘기며 보란 듯이 헤치며 우뚝 일어선 당신의 모습에서,
그리고, 원칙과 신념을 고수해온 당신의 이력속에서 난 희망을 보고 있습니다.

오늘이 있기전, 난 당신을 보지 못했습니다.
내 기억속에 있었던 당신의 모습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절대권력자들을 상대로 당차고 호되게, 조목조목 논리정연한 당신의 원칙으로 꾸짖던 모습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모습은 어느사이엔가 내 기억속에서 멀어져 갔습니다. 당신 주변으로부터 터져나오는 정책 하나 하나는 정말 정직하고 성실한 한 기술자의 생계를 위협하기 시작했으니까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이미 범법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국가 정책기관으로부터의 고지서가 몇 달간 왔었는가 싶었는데, 어느날엔가는 ‘법 몇조 몇 항에 의거 강제 집행할 수 있습니다. 어쩌구’ 하는 협박장이 날아오더군요. 순간, 난 당신과 당신 주변을 내 삶의 적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T.V에선 당신의 과거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아주 가난했던 어린시절과, 뚜렷한 소신의 행동가 소년 무현, 그리고 고시준비와 판사, 변호사 시절....군사독재와 맞서던 시절과 인권변호사...거리의 변호사...인권운동가...구속...정치가..낙선의 실패자...현역군생활...그리고 오늘...

내가 보지 못했던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남대문 시장속에서...부산에서...촬영 스튜디오에서...유세장에서...

난 당신을,
모든 것이 끝이나 버린 지금에서야 T.V를 통해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막연하게나마 마음 한 구석에서 자그마한 희망이 솟아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자~아 고등어가 왔습니다. 싱싱한 고등어가 한 마리에 980원.
자~아 노무현이 왔습니다. 싱싱한 노무현이 왔습니다.

아! 내가 보지 못했던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주변만의 후보가 아니라 바로 국민후보였다는 사실 말입니다.
아니, 당신은 당신 주변의 후보가 아니었습니다. 당신은, 이나라 정치집단의 후보가 아니라, 당신은 바로 대한민국 국민의 후보였다는 사실 말입니다.

오늘 난 당신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누구도 내 삶을 이보다 낫게 해 줄 수 있다는 희망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지금 이 시간, 난 약간의 가슴 설레임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긴 하지만, 당신의 이력에서, 당신의 신념과 행동력에서 희망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후로 난, 당신을 연구하려 합니다. 당신의 지난날에 대해 공부하고, 당신의 철학과 신념에 대해 연구하고...당신의 앞날을 지켜보려 합니다.

비록 4식구의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힘들게 뛰고 또 뛰어야 하지만, 틈틈이 짬을 내어 당신을 공부하고 지켜보려 합니다.

반 만년의 역사가, 추하고 더럽고 오욕으로 점철된 역사가 아니라, 정정당당하고 자랑할만한, 아니 만 천하에 자랑하고 다니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 수 있는 역사가 되는냐는 바로 당신의 어깨에 달려 있습니다.

당신의 젊은 시절, 거리의 인권 변호사 시절처럼, 시장통속 바로 내 이웃과 함께 했던 바로 그 당신처럼 행동과 실천, 신념과 정직의 당신이기를 희망합니다.

다수의 횡포에 끌려 다니지 않기를, 비록 소수라도 원칙과 신념이 선 정직이 있다면, 강직하게 추진해 가는 그런 당신이기를 희망합니다.

당신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많기를 희망합니다. 따뜻한 인간애를 가진 사람들어어야 하며, 원칙과 소신이 분명한 사람이어야 하고, 옳고 그름에 주장이 있어야 하며, 해박한 지식을 지닌 전문가이어야 합니다. 과학 기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어야 하고, 포장과 겉멋의 필요성과 단단하고 알찬 실질의 어우러짐을 조화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나 아닌 다른이의 생각을 존중하되 그 우선순위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하며, 내 생각에 잘못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 또한 있어야 합니다. 다른 이의 생각을 반영할 줄 알아야 하며, 당신과 함께 일 할 수 있음을 즐길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당신 주변에 많기를 희망합니다.

당신이 이런 환경에 처하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해바라기 속에 둘러싸여, 정작 보아야 할 대상을 볼 수 없게 되는 상황이 되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적당한 숫자 놀음에 묻혀 세월을 낭비하는 그런 상황이 되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경제적 부유층의 유혹과 회유, 협박과 정치적 압력이 당신 주변에 포진하는 그런 환경이 되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오늘이 있기전, 난 당신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난, 모든 것이 끝나고 난 지금에서야 당신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작은 희망의 불꽃을 보고 있습니다.
비록 당신을 선택하진 않았지만,
부디 이 작은 희망의 불꽃이 꺼지지 않고,
활 활 타오를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2002. 12. 20. 오전 2시 54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