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멋/제주의 오름

[2007.01.24 (수) 맑음] 한라산, 윗세오름의 하늘이 열리고...

금오귤림원 2007. 1. 24. 23:07
갑작스런 몸살로 일정을 취소해 부런!"
"그럼 어떵헐꺼라. 가지 말어?"
"글쎄...기왕 맘 먹은거, 갔다오카?"

이러쿵, 저러쿵...가자 말자를 반복하다 결국!

주섬 주섬 배낭을 챙겨들고 나섰다.

어제저녁 늦게까지 크지는 않았지만 제법 비가 내린 후이기도 하거니와,
근 한달여(?) 단식투쟁(?)까지 벌였던 바라 무리 할 수 는 없고....

영실로 천천히 다녀올 요량이었는데....

어리목 부근에 이르기 전, 도로 갓길로 눈이 쌓여있다.

어리목에서 윗세오름까지만 갔다오지 뭐....

어슴프레한 이른 아침. 평일이어서일까?
제2횡단도로도 도로지만, 거기서 어리목 산장까지의 길도 너무 한산하다.

그 고즈넉한 길을따라 정말 오랫만에 걸었다.

국립공원의 무료화이후 첫 산행.
그래도 예전의 매표소엔, 전날 당직자인듯. 눈에 익은 남자분이 긴 하품과 함께
일찌감치 산을 찾은 나그네를 반긴다.

"수고햄수다."
"예. 잘 댕겨옵서"

그렇게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아이젠을 챙겼다.

발목까지 차 오르는 눈에 행여 미끄러져 허리다치면...곤란하잖아.....

한 발 한 발 옮기기가 조금은 힘이 들었다. 앞선이가 몇 있긴 한데, 많지 않은 듯,
아직 다져지지 않은 눈발을 헤쳐가기도 힘들었겠지만,
정말 오랫만에 찾은 한라산은 우선 숨부터 가쁘게 만든다.

몇 분간 조잘 조잘 재잘 재잘...
함께한 집사람, 그리고 옆집 아주머니간 이야기기 오고 가더니
이내 조용해진다.

앞선 사람 저 만치 앞서고....

그저 가삐 몰아쉬는 내 숨소리만이 깊은 정적속을 헤쳐 나갈 뿐....
서걱 거리는 발자욱 소리에 장단 맞춰 숨을 골라본다.

하늘은 시커먼 먹구름으로 덮여 청명함을 잃었지만,
사제비 동산에 이르러 시야가 툭 트이는 순간, 잠시 잠간 그 하늘이 열리기 시작한다.

해 맑은 햇살이 실틈같은 먹구름을 뚫더니 이내 그 푸른빛 하늘이
오랫만에 산을 찾은 나그네를 반기듯 열린다.

그 장엄함이란....그 해 맑음이란....
세상 무슨 말로 그 모습을 표현할 수 있으리....

서투른 재주지만...연신 셔터만 눌러댈 수 밖에 없었다.

두 꼬마가 저 만치 앞섰다.
지루한 산행에 이미 벌써부터 싫증이 난 듯, 둘 째로 보이는 사내 녀석의 발걸음이 시원찮다.

"참 용감하네? 그런데...여기서 포기할꺼야?"

시무룩한 표정의 그 둘째 녀석은...대답이 없다.
마치 이 지루한 여행을 왜 하게 되었는지, 아빠가 원망스런 표정이다. ㅎㅎㅎ.

"그래도 부랄 차고 났으니, 여기서 포기할 순 없지? 이제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저 위에서 꼭 만나자?"

그리고는 고 녀석들을 뒤로 하고 먼저 앞섰다.

윗세오름 산장.
언제나 혼잡한 분위기의 사람들로 꽈악 차 있었는데...
오늘은 참으로 한적하다.

영실코스로는 단 한 사람도 오르지 않았는지, 눈부시게 반짝이는 햇살만이 반사되어 돌아올뿐
그 어느곳에서도 발자욱 하나 찾아 볼 수 없다.

산장안에서의 컵라면 하나와, 커피 한잔. 그리고 어제 저녁 삼달리 유기농부와의 만남끝에
손에 쥔 맛난 떡 몇 조각은 지친 나그네의 공복을 메우기에 충분하다.

얼마나 흘렀을까.

마침내 고 녀석들이 올라왔다.

서울 사는 녀석들이 아빠 출장길을 따라 나섰던 모양이다. 미처 이런 저런 준비없이
눈이 쌓였으리란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터라, 평상복 차림이었던지라
녀석들 신발은 이미 젖을 대로 젖어 동상이 염려되었었나 보다.
아빠의 걱정이 산장안 분위기를 압도할 즈음.

함께한 옆집 아주머니의 응급보호방책이 발휘된다.

산장안에 비취된 자그마한 비닐봉지 몇 장을 가지고 녀석들 양말까지 벗긴다음 그 비닐로
감싸고 그 위에 다시금 젖은 양말을 신긴다.

그래 맞어.

아빠되는 사람과 몇 마디 인사말씀. 그리고 커피 한잔을 건네고는

산장을 뒤로 하고 하산길을 재촉한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자그마한 체구의 어떤 아저씨와 말 없는 씨름을 이어가며 그렇게 하산하여 다시금 어리목 산장에 닿고보니, 그 아저씨는 한 켠에 세워둔 스쿠터를 챙기시고....

"아니, 그 스쿠터로 여기까지 오십디가?"
"예. 요게 그래뵈도 좋아요. 기름도 적게 들고.....ㅎㅎ"
"요 녀석하고 함께 한 세월이 벌써 10년을 넘기고 있수게."
"예? 10년이나 마씸?"
"이틀에 한 번꼴로 그 10년간 빠지지 않고 다녔수다. 이번에 1100번짼게 마씸."

어이구머니나. 아니 세상에....미쳐도 저렇게 미칠수가.....
믿을 수가 없네. 어떻게 이틀에 한 번씩 산에 오를수가....

"오십되던해에 시작했으니...올해 예순하나거든 예."
"겅하니 벌써 11년째...."

그제서야 이미 예순을 넘기신 분이라는걸 알았지만,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어찌 저리 젊으실까....

"참 대단하십니다. 농담이 아니시라면...정말 정정하시고 젊으십니다. 예."

그렇게 또 다른 경험과 이야기거리를 만들었다.

산행.

언제건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