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멋/제주의 풍경

[2006.07.03 (월) 맑음] 서귀포시 표선면 하천리 포구

금오귤림원 2006. 7. 3. 22:33

서귀포시 표선면 하천리 포구
"무스거 햄서?"
"예? 아, 예! 이제 막 일어난 마씸."
"무사, 오지 않헐꺼라?"
"일기...좋았수가?"
"이딘 원 햇빛이 과랑과랑 해서."
"예. 이디도 비는 올거 담지 안험수다만, 알안 예! 이제 차려그네 나서쿠다."
"어. 와게. 오멍, 같이 다니는 아주망들이엉 고치 와도 좋고."
"예. 전화 해 봐그네양? 가켄허민 함께 가쿠다."

9시 반쯤이려나?
원체 늦게야 잠자리에 드는 바람에, 해가 중천에 떴는지도 몰랐다.
따르릉거리는 전화벨 소리에 덜 깬잠을 뒤로하며 수화기를 들었다.

지하실 배수문제로 여간 마음 고생이 많았다며 마음 써 주시는 주인댁 사장님의 배려를
못내 떨치지 못한다. 연세도 연세려니와, 워낙 사람을 좋아하시는 성정이시라....

표선면 하천리 포구.
안 사장님의 수고로, 바람 서늘한 해녀들 작업장 한 켠에 한 상을 차렸다.
시원한 바람. 툭 트인 바다.
오늘은 그 축축하고도 짭짤한 바람조차 없이
마치 산에서 맞는 바람과도 같이 시원스럽기만 하다.

텅 텅 거리는 귀에 익은 소리가 들린다.
엥? 바닷가 포구에 웬 경운기 소리?
억수같이 퍼 붓는 소나기가 바로 엊그제 연이은터라
하천리 포구엔 작은 조각배 몇 척 뿐, 잡아 올린 고기들을 운송할 일도 없는데....

어느 노인의 경운기는 포구를 감싸안은 방파제 끝에서야 멈춰선다.

멀리서나마 노인의 외로움과 바다를 향한 그리움이 느껴지는 순간.

"어이~그기서 뭐 햄서. 와 게. 와그네 소주 한 잔 허여."

굵직한 주인댁 사장님의 목소리가 팔랑거리는 파도위를 날아 저편 끝에 닿는다.

이내 다시금 그 탕 탕거리는 디젤엔진소리와 함께 구리빛 주름살로 인해 더욱 연로해 보이는
노인은 함께 자리를 했다.

"갑장이라."

쉽게 감이 오지 않는다. 어릴적부터 함께 자라온 막역지간 친구라 하신다.
언듯 뵙기에도 한 참 위일것만 같은 모습.
하긴, 연세에 비해 주인집 사장님은 퍽이나 젊으신 모습이지만...

소주 두 병에, 맥주 두 병.
거나하게 취할 만큼은 아니지만,

싱싱한 자리돔회를 안주삼아 걸죽하고도 구수하게 풀어놓는 노인의 40년 바닷배 샣활담은
때론 웃음으로, 때론 그리움으로, 때론, 해박한 지식으로 그렇게 다가 온다.

"자리돔은 제주도에서도 여기 자리가 최고여. 뼈도 부드럽고 크기도 굵고, 맛은 최고지..."
"그럼. 서귀포 보목리여 모슬포여 허지만, 당췌 여그 자릿만 못해."
"저기 저 수평선 끝쯤해서 '여(바닷물위에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아주 넓직하고도 앝으막한 봉우리)'가 있는데, 그 여를 중심으로 물살의 세기도 세고 소용돌이가 있어 고기맛을 더하게 하지."
"옛날에 금득이라는 해녀가 있었는데, 어쩌다가 그 부근까지 떠내려가서 죽었대. 그를 찾다가 발견한 '여'라서 '금득이여'라고 부르지. 그 부근엔 두 개의 여가 있는데 동쪽에 있는것이 '동여' 서쪽에 있는것이 '서여'라고 햄서. 자리 거래러 나간 배두 어떤 배는 금방 만선이지만 어떤 배는 종일 거래봐도 별반 재미를 못보기도 하구..."
"이 양반은 가늠하는데는 일인자여. 아무도 못 따라가지. 이 친구 가늠은 원 아주 정확하여."

"가늠이라니....., 도대체 뭔 소리여?"
제주에 닻을 내린지도 벌써 20여년이 훌쩍 넘었다. 그런데도 아직 감도 못 잡는 그런 일상적 말들이 있을 줄이야.

"어르신...가늠이라니요? 잘 모르겠습니다."

"허~ 이사람 제줏사람 맞는가? ㅎㅎㅎ. 바다위에 뜨면, 내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알아내는 방법이여. 육지에 있는 두 산의 모습으로 내 위치를 찾아내지. 멀리 보이는 두 개의 산이 어느 순간에는 떨어져 있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붙어 버리는 그런 일이 허다 하거든. 그 두 산의 겹치는 지점을 잘 찾아야 내 위치가 '동여'인지 '서여'인지를 안다는 말씀이네."


일전의 노로오름에서 혼쭐이 난 터라, 나침반과 지도를 이용한 독도법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터라 그제서야 노인의 설명을 알아 들을 수 있었다.

원체 술을 멀리 하는 성격이라, 권해 주시는 소주 한 잔에 맥주 한잔으로,
또한 원체 자리돔회를 먹어본 경험이 없는지라, 그 것 역시 한 점 상추쌈으로...

동행한 아주머니와 집사람은,
정말 오랫만에....진짜 맛있는 자리회를 양껏 먹었다고 좋아하고,
음식을 내어놓은 안사장님께서도 흐뭇하신 모습이다.
그렇게 시골 노인분들과의 별식 점심을 참 재미있으면서도 의미있게 마쳤다.

중간에 들른 마을 어르신들과도 인사를 나누고, 노인과도 헤어졌다.

"나이가 들어 길에서 봐져도 잘 몰라 볼거여."
"예, 어르신! 제가 먼저 인사 여쭙도록 하겠습니다. 살펴 들어가십시요."

소주 한 잔을 사이에 두고 이것 저것 많은 이야기를 들려 주시던 노인의 한 켠에서
조금의 서운한 기운을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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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인듯 부족한 듯.
다시금 시흥리로 향하신다.

일전에, 시흥리 포구의 시흥어촌계에서 운영하는 식당의 조갯죽이 너무 맛있었다는 말씀을
확인 시키시고 싶으셨던게다.

제주의 음식은 대체로 신선하고 자연적이긴 하지만, 육지식 조미음식에 맛들은 일반인들의
혀끝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그렇지만, 이 곳의 조갯죽은 그렇지 않았다.
조금은 짭짤한 듯, 정말 개운한 조갯죽이 그 비싼 전복죽보다 훨씬 좋다. 가격도 저렴하고 양도
많고....

그렇게 오늘 하루가 간다.

멀리 나즈막히 보이는 매오름(이곳 사람들은 매봉이라고 부른다.)을 올라 오늘 하루를 마감하고
싶었지만, 못내 동행인들의 사정에 다음기회로 미루며....

마을안길 꼬불하니 정다운 돌담길을 따라 봉숭아가 예쁜 모습을 피웠다. 빨강, 분홍, 하양.....
하천리 포구에 정박중인 조각배...
요렇게 멋들어진 보-트도 있다.
하천리 포구에서 바라 본 표선 매오름(매봉) 전경
현대 리조텔에서 공사중이라고 했던가? 아마도 그 부근 어디메쯤 표선민속박물관도 있을것이다.
넉넉한 인심에 훈훈한 마음의 시골노인, 경운기는 노인의 자가용인 셈이다.
자리돔.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제주만의 특징을 갖는 돔이다. 난생 처음, 그 자리회를 맛봤다.
뼈까지 아작 아작, 초고추장과 상추, 그리고 깻잎에 둘러친 맛은 일품이었다.
불편하신 몸이지만, 그래도 맛있는 밥은 빼놓지 않으셨다.
어느사이, 노인의 자가용은 포구 방파제 끝에 서서, 그리운 듯 저 편 바다위를 나른다.
집사람이 자그마한 자리 한 놈씩을 먹기 좋게 반으로 나누었다.
먹음직하지 않은지? 조금은 운이 없었나? 마악 잡아올린 자리돔을 깨끗한 바닷물에 헹궈
그 참 맛을 보여주시려는 주인사잠님의 마음과는 달리, 냉동고에서 얼렸던거라 맛은 조금
떨어지지만, 그래도 많이 먹으라는 훈훈하고 따뜻한 마음이 더 맛스럽다.
찰랑거리는 물결따라 흔들러기는 조각배. 묶인 몸을 풀어달란다.
깨끗한 바다위 하얀 물거품일까? 찌뿌둥한 날씨에서 잠시나마 벗어난 하루를
즐겁게 해 준 하늘과 구름.
시흥리 마을로 들어서며...저 봉우리 이름은 뭐꽈!
시흥리 어촌계식당 바로 앞에 저 박물관이 있다. 벽면이 온통 조갯껍데기로 장식되어 있다.
시흥리 포구에 늘어선 고기잡이 배들...
시골이 시골임을 포기한지 이미 오래다.
시원스레 툭 트인 곳 어느곳이건, 펜션과 민박, 호텔, 리조텔등 가득하다.
시흥리 어촌계식당의 6,000원짜리 조갯죽!
맛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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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천리 포구
시흥리 포구. 왼편 오름의 이름은 모름. 가운데 섬은 우도, 오른쪽 오름은...그 유명한 성산일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