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은 여지없이 여인네 마음을 흔들어 버렸다. 어디든 나서자는 안사람의 성화에 못 이겨, 종일토록 자고만 싶은 내심을 툴툴 털어버려야 했다. 그래, 이왕 나선거...지난 주에 보아 두었던 높은오름을 찾아 나서볼까?
동부산업도로를 거쳐 대천동 사거리에서 송당방향으로, 그리고 중간쯤에서 갈라지는 오름사이로는 한결같은 모습으로 객들을 맞는다. 백약이 오름 입구쪽에 차를 세워두고, 천천히 걸어 높은오름을 찾아 나서다, 오른편으로 보이는 동검은이(거문이,거미)오름의 모습에 발걸음을 돌렸다. 제주의 오름은, 보는 장소마다 그 형태를 달리한다. 그렇지만, 어느곳에서건 그 부드러운 곡선형태의 능선만큼은 비슷했는데... 유독, 동거문이오름의 능선은 가파르게 치솟은 직선이다. 뾰족한 첨답처럼 그 정상의 끝은 금방이라도 파랗게 물든 하늘바다를 찌를듯 그렇게 하늘을 향하고, 그 능선을 따라 색색의 작은 점들이 이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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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내 어느 초등학생들이란다.
"이 오름이름이 뭔지 알아?"
"몰라요"
"동거문오름, 동거문이오름, 동검은이오름, 거미오름으로 부르거든? 저 앞에 보이는 오름은?"
"몰라요"
"녀석하곤...어른들한테 한 번 물어보지...저건 백약이오름, 그리고 이쪽은 아부오름, 다랑쉬오름, 높은오름..."
"그럼, 저기, 저렇게 둥그렇게 움푹 패인거 보고 뭐라고 하게?"
"몰라요"
"음..굼부리라고 하지, 아마 교과서에서는 분화구라고 나와 있을거야."
"아. 알아요. 분화구...."
그렇게 한 사내녀석과의 몇 마디 주고 받음을 마치자, 이내 몇 몇 아이들이 주변으로 모여든다. 한 여자아이에게 다시 물어본다.
몰라요...
손에 들고 있던 접혀진 지도...녀석의 머리를 한 번 툭, 왜 때려요. 허! 그녀석... 머리를 한 번 쓰다듬자...
"내가 왜 아저씨한테 대답해야해요?...."
냉랭하다. 아마도 모르는것에 대한 자존심이 상했었나?
더 이상 말을 건네지 못하겠다. 어쩌다 이모양이 되었을까. 저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사람에 대해 무엇을 느낄까....한편 안타깝기도 하고, 가슴 한 편이 답답해 오기도 한다.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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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봉을 향해 거친 숨을 내쉬다 잠시 발걸음을 멈춰 오름 아래를 향해본다. 발 아래 작은 봉우리 정상은 둥근 원형굼부리형태.... 그리고 주봉에 올라 내려보니, 반대편 작은 봉우리와 함께 어우러져 말굽형 굼부리가 무척 깊다. 현기증을 일으킬만큼의 굼부리 경사면도 크고, 그 깊이도 까마득하다. 오름산행을 세어보면, 어림잡아 벌써 40여 오름....
동거문이오름에서의 현기증은 처음이지 싶다. 그만큼 다른 오름에 비해 험하다고 해야 할까? 동.서.남.북 모두 훤히 트여 동부의 오름들은 올라보지 않아도 될 듯 싶을정도로 모두 눈에 들어온다. 백약이오름, 궁대오름, 좌보미오름, 용눈이오름, 손지오름, 다랑쉬오름, 아끈다랑쉬오름,... 아주 멀리...수산봉도 보이고... 높은오름은 바로 옆에 우뚝하니 서있다. 그리고...길고 나즈막한 아부오름과 문석이오름, 민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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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바퀴를 돌아 반대편으로 하산하는 길은... 세상과 이별한 이들이 모두 모여 휴식을 취하는 듯 하다. 제주의 들녘과 오름자락들은 산자와 죽은자들이 함께 어우러진 공간이다. 아주 멀었던 옛날에야, 산자와 죽은자들 사이의 생활공간이 한 없이 멀었을것이건만,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있어 그 공간은 지척이다싶이 가까이에 있다.
그 다른 한 편으로는 곶자왈 바다가 펼쳐지고, 그리고 다른 한 켠으로 가시덤불, 가시나무 사이 사이로 포동 포동한 고사리들이 그 앙증맞은 손을 오므린채 길손의 눈길을 피하고 있다.
"요놈들...."
한 참을 그 가시밭길에서 맴돌다, 희미하게 난 농로를 따르다보니 옆지기가 보이지 않는다. 고사리 꺽음에 재미를 붙여도 한 참을 붙인 모양이다. 할 수 없지 뭐...다시 돌아갈 수 밖에... 그리고.... 꺽은 고사리 한 다발을 배낭에 담고 커피 한잔, 컵라면 한 사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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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내일 새벽이면.... 동네 아주머니 몇 분과 함께 우리집 앞이 술렁거릴지 모른다. 이 고사리밭을....가만히 두고 볼 [.여.자.]들이 아님은 그 간의 경험을 들추이지 않더라도...
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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