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농부와 독서

기적의 사과 - 이시카와 다쿠시 / 이영미

금오귤림원 2010. 8. 12. 13:35

지난 달 중순경쯤 될까. 집앞 도로변에 누군가가 흘린 듯, 책 한권이 떨어져 있었다. 그 책을 들어 제목을 살피니 『상도』라는 최인호님의 장편 소설. 전 5권 중 2권이었다.

모 기관의 도서실 도장이 찍혀 있는 것을 보니 그 기관의 소속 직원이 빌려 읽다가 떨어뜨린 것이리라. 아무튼, 김진명님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살수』, 『제3의 시나리오』에 이어 박범신님의 『나마스테』를 마지막으로, 소설이 되었던 수필이 되었던, 인문분야 책과의 인연을 끊은지도 벌써 몇 년은 되었던지라, 이 참에 다시금 책읽기를 시작해 볼까? 하는 마음으로 일단 읽기 시작했다. 물론 다 읽은 후, 해당 기관에 도서는 반납을 했거니와 결국 개정판 전 3권을 구입하기까지 했다.

결론적으로 계기가 되어 버렸다. 제주농업마이스터대학 2학년 2학기가 개강을 했고, 【경영.마케팅】이란 과목이 개설됨과 아울러 담당교수님으로부터의 과제가 『기적의 사과』라는 책을 읽고 감상문을 제출하라는 것이었기 때문에라도 계속해서 책을 읽어야만하는 계기가 되어 버린것이다.

한라도서관을 찾았다. 도서 대출증을 만들고, 당연히 있을것이라 대출을 신청했는데,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사과나무의 기적"이라는 도서명으로 대출을 신청했는데, 실제는 "기적의 사과"였기 때문이었다. 그냥 나오기가 멋적어 『상도』4권을 대출하여 돌아와 하룻만에 다 읽고는 결국 개정판 전 3권 모두 구입해버렸고 그 후로 이틀간 읽어 버렸었다.

우당도서관에서도 찾던 책은 없었다. 당연했다. 도서 이름을 잘 못알고 있었으니... 워낙 유명한 도서이니,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 보면 정확한 도서명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과는 『기적의 사과』. 한라도서관 인터넷 사이트에서 검색을 해 보니 2권을 소장하고 있었다. 곧 바로 한라도서관으로 향했고 도서를 대출했다.

사실, 처세에 관한 책이나 성공에 대한 책은 아예 관심없는 분야인지 오랬다. 성공한 사람의 개성과 내 개성이 다르기 때문이며 그가 생각하는바와 내가 생각하는 바가 크게 다를 수 있을것이기도 하거니와, 그의 성공까지의 시대와 상황이 나와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대부분의 성공과 관련한 책자는 대체로 일맥상통,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처세에 관한 내용으로 그 흐름이 천편일률적으로 대동소이하다는 것이 내가 기피하는 첫째 이유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반 강제적 권유에 의해 대출을 했고, 그 첫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으며 결론적으로, 세 번정도 굵직한 눈물을 참지 못하고 끝내 옷깃을 적시기도 했다.

이 책은 기무라 아키노리(木村秋則)이라는 일본의 한 사과재배 농부의 이야기를 이시카와 다쿠지(石川 治)라는 논픽션 작가가 밀착취재형식으로 엮은 책이다. 일본 NHK TV의 "프로페셔널-프로의 방식"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먼저 소개 되었고 부족한 부분들을 보충하기 위해 책으로 엮어졌다.


"너무 많이 먹으면 안된다."

"벌레에게 보내는 경고! 이 이상 밭에 해를 입히면, 강력한 농약을 사용하겠다!"

책의 주인공인 기무라 아키노리가 사과나무 잎을 갉아 먹는 자벌레에게 내 던지는 말이었으며, 종이상자 조각에 써 놓은 벌레에게 보내는 경고팻말의 내용이다.

농약과 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사과나무를 재배하는 것.
우리의 제도적 시스템으로서는 유기재배농산물이 될 것이다. 사실, 과수재배에 있어 저농약재배나 또는 무농약 재배는 어느정도 우리 농업분야에서도 도입되어 실제 재배되고 있는 실정이긴 하지만, 농약과 비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유기재배는 극히 드문 실정이다. 그만큼 어렵고도 어려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도 하다는 이야기다.

우리에게 있어 유기재배농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화학비료 대신 다른 형태 즉, 나름대로 개발한 유기질 비료나 액비가 투입되고 있고, 화학농약 대신 역시 나름대로 개발한 대체 농약이 투입되고 있는것이 실정이며 때로는 다른이의 눈을 속이는 행위도 어느정도 감지되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기무라 아키노리는 일체의 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가 사용하는 비료는 과수원에 자라는 자연초종의 자연적 잔사 퇴비였으며, 기껏해야 식용 식초가 농약을 대신했고, 눈에 보이는 해충은 일일이 손으로 잡았다.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을 해 본다. 그가 재배하는 과수원의 면적은 어느정도일까. 네 군데 정도라고 소개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리 작지않은 면적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 재배면적이 확실하게 나타나 있지 않기에 가족 모두가 매달리면 어쩜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과 더불어 도대체 수입이 있어야 생활을 할 것이 아닌가. 어떻게 생활을 해 나갈 수 있다는 말인가.

기무라 아키노리는 과수원에서의 수입이 없는 것에 탓하거나 비료와 농약을 사용하는 대신,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했다. 꿈이라기 보다는 어쩜 오기일수 있지 않을까. 아무튼,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11년간이나, 보통사람으로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그 긴 세월을 고군분투했다.

나라면 가능할까. 하긴, 아집으로 똘똘 뭉쳐진 내 성격에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다. 아니, 지금 현재 비록 그와는 다른 방식이긴 해도 나 역시 진행중이기에...

하지만, 나와는 아주 다른 면이 있다. 그는 그 자신의 소유이지만, 나는 임대농이다. 그리고, 그 임대지로 인해 두 어번 세상과 이별을 해야 할 만큼 가슴아픈 사연도 가지고 있다. 그 후로는 재배지에 대해 처음처럼 그렇게 애지 중지 살피지 않는다. 결국 토양을 회복시키고 재배 작물을 정상궤도에 올려 놓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아주 일상적인 모습으로 빼앗아 갈 것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계약서라는 문서는, 특히 농지 임대차 계약서라는 문서는 이 사회에서만큼은 아주 우스운 종이조가리에 불과했었다.

"힘들게 해서 미안합니다. 꽃을 안 피워도, 열매를 안 맺어도 좋으니 제발 죽지만 말아 주세요."

기무라 아키노리가 절규하듯, 자신의 무기력함을 호소하듯 그렇게 죽어가는 사과나무를 향해 건넨 말이다. 이미 파산자라는 별명과 함께 식구들을 제외한 이웃들과는 어울릴 수 없는 외톨이가 된 상태이기도 했다.

나는 첫 번째 눈물로 옷깃을 적셔야 했다. 대화내용과 과수 상태는 다르지만, 주변을 둘러싼 상황등이 비슷해 동병상련을 느꼈기 때문이랄까.

죽으러 갔던 숲속에서 흙의 모습을 본 후, 기무라 아키노리는 과수원의 흙과 숲속의 흙을 비교하게 된다. 그리고 그 흙의 모습이 무척 다르다는것을 알게 됨과 아울러, 흙속의 미생물과 그 역할에 대해 깨달았으며 그 숲속의 흙을 만들기 위해 풀들을 키우고 콩도 뿌렸다.

나의 경우에 있어 초생재배의 시작은 우연한 발견에서 시작되었다. 처음으로 농사라는 일을 시작했을 때, 20여년을 제초제와 농약, 그리고 화학비료로만 관리되었던 과수원이라 땅은 그야말로 바위덩어리였다. 반질 반질한 흙위로 이끼가 자랄 정도였으니 그 땅의 굳은 상태가 어느 정도였을까. 그래도 망초와 덩굴성 잡초들은 끈질기게 그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었다. 당연히 망초를 제거하고 덩굴성 잡초들을 제거해야 했고 심지어는 낮은포복 자세로 땅바닥을 기어 다니기도 했다. 그러는 와중에 바랭이와 마주쳤고, 그 바랭이를 뽑다가 그 뿌리가 굵고 잔뿌리는 있지만 어느정도 성긴 상태이기에 불현듯, 이 바랭이를 통해 어쩌면 땅속에 공기를 공급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었다.

그 후로 바랭이는 그냥 놓아두고 망초와 덩굴성 잡초들만을 제거하기 시작했고 2년여가 지나 과수원 전체가 바랭이로 들어차게 되었음과 아울러, 겉흙이 부드러워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땅속의 미생물들을 분석하지는 못했지만, 그로인해 땅속 미생물들은 물론 그 생태계도 어느정도 회복되지는 않았을까.

아무튼, 그해 수확물의 맛은 누구도 인정을 해 주었다. 다만, 농약을 사용하지 않아 생긴 몇 종류의 상흔을 제외하고...
물론, 그 2년간, 2시간여 걸리는 거리를 수산물 시장에서 거둬들인 생선부산물들을 일일히 땅을 파고 일정량씩 공급해 준 이유도 있겠지.

그러나 그 과수원은, 그 다음해 원 주인에게 넘겨야 했다. 그 후로 2년여간 난 죽은 사람이었다.

기무라 아키노리는 자연을 이해했다. 자연속에서의 생태를 이해했고, 생명을 이해했다. 그리고 사람역시 자연의 일부이며 그들이 하찮게 여기는 미생물이나 해충이며 병원균 역시 사람과 마찬가지로 먹거리를 찾는 자연속 일부임을 인정했다. 그와 동시에 그들이 살 수있는 환경은 만들어 줌으로써 그가 원하는 만큼의 성공을 엮어낼 수 있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욕심에 대해 깨닫지 못한다. 각 개인의 잘못일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물질만능이라는 유혹은 이미 인간 본연의 욕구인 식욕이나 성욕쯤은 거뜬히 넘어설 만큼 강력해져 있다. 그 욕구가 환경을 조성하고 그 환경속에서는 또 다른 욕구를 생성해 내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즉각적인 반응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은 스스로가 서서히 죽어간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산더미만큼 덩치를 키운 기업들은(그 성격이 공산품을 제조하는 기업이든, 농산물을 생산하는 기업이나 농업단체, 회사 등)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사람들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는다. 물론, 사람들은 그러한 사실을 믿으려고 하지도 않을뿐더러 알아 차릴 수도 없다.

특히 선진 농업수출국들의 소위 말하는 다국적 기업들 중 농산물과 직접적인 관계에 있는 기업이나 식품관련 기업, 패스트푸드 기업들의 교묘하고도 상식을 뛰어넘는 마케팅 기술은 대부분의 사람들을 마약중독자들로 만들어 버려 스스로 생각도 하지 못하는 로보트로 만들어 버렸다. 그들이 의도하느 바대로 움직일 수 밖에 없는 로보트....

그런 사람들이 기무라 아키노리와 같은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고 죽기 일보직전까지 몰아간다. 이유는 단 하나, 자신의 이익이라는 욕심. 그것 때문에...

언제까지 우리는 그들의 농간에 놀아나며 먹거리에 대해 정직한 사람들을 따돌리고 죽음에 까지 이르게 할 것인가. 자연과 생명에 대한 깊은 통찰과 이해는, 스스로를 살리는 길이기도 하거니와 주변 모두를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오염된 산업사회에서 농업마저 그 오염을 빼닮은 대량생산체제의 산업으로의 길을 걸어야 할 것인가. 대량 생산체제의 농업에서 유기재배는 어쩜 불가능해 보인다. 아니 불가능하다고 단언하고 싶다. 이 말은 농부 또는 농가, 단체에서 할 수 있는 적당한 체제의 생산체제를 유지해야만 가능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물질에서의 만족이 아니라, 마음에서의 만족을 위해 지나친 과욕을 조금씩이나마 덜 수는 없을까.


"꽃이 피었어, 이사람아."
그렇게 말해 주는데도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꿀 먹은 벙어리 표정이란 바로 그런 걸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이와키 산자락에 있는 자네 사과 밭에 꽃이 피었다니까! 뭐 해, 얼른 가보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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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밭의 농기구 창고에 도착하자, 창고 뒤에서 고개만 살짝 내밀었다.
하얀 꽃이 보였다. 밭 한가득 하얀 사과 꽃이 피어 있었다.
몇 년동안이나 꽃을 피우지 않던 사과나무들이 일제히 꽃을 피우고 있었다.



나는 다시 아까보다 더 굵은 눈물방울들로 가슴팍을 적실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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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빌리기 위해 한라도서관을 찾았다가 그 뒷편으로 펼쳐진 천연염색 건조장에서 어쩌면 소중한 인연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 이태리 유학파 의상 디자이너를 만났다. 제주 자연의 풍성한 감성을 고스란히 옷감에 담아 전하고 싶다는 디자이너.

경기도 파주, 헤이리. F Craft.
기회가 닿아 여행을 나서게 될 때, 일부러라도 들러 차 한잔 청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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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을 추천해 주신 교수님께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