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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2 (월) 약비] (표선과수원) 2차 예초작업 1일차

금오귤림원 2010. 7. 12. 23:40

1. 표선과수원 예초작업
    * 목적 : 과일 성숙기 일조량 확보 및 양분 경합 최소화, 유기질 비료 공급
    * 작업시간 : 오전 9시 30분 ~ 오후 6시 30분 (9시간)
    * 작업량 : 북측 약 1,200여평 예초완료.
    * 남은구역 : 남측 약 600여평 - 명일 작업 예정

2. 잠시 잠간 쉬는 틈을 타고, 미국에 있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 나 명석인데, 니 전화기 컬러링 괜찮네? 영어 팝송곡에 가야금 반주라....ㅎㅎ
      (사실, 비틀즈의 Let it be 곡을 가야금으로 반주한 컬러링이다.)
    * 어~~ 괜찮으면 너도 그거 해라. ㅋㅋㅋ
    * 다름이 아니라, 좀 황당한 질문을 하려고 전화했어.
    * 뭔 말이여? 황당한 질문을 하려고 미국에서 전화를 다 해? 뭔데?
    * 제주도 조랑말 있잖아, 그 놈 무릎 부근에 눈이 달렸냐?
    * 에구, 이 무슨 진짜 황당한 질문이야? ㅎㅎㅎ. 아니, 웬 뜬굼없이 눈 달린 타령이냐?
    * 아니, 얼마전에 옆지기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거든? 근데, 조랑말 목장주가 하는 말이 그렇다네?
       그래서 내기까지 걸었잖아.
    * 에이, 그만큼 말이라는 동물이 예민하고 겁이 많다는 뜻이겠지... 어찌됐든,
      조랑말 키워보지 않아서 난 잘 모르겠다. ㅎㅎㅎ.
      그리구, 웬만하면, 걍 마눌님한테 져 줘라. 그게 상책이다....ㅎㅎ
    * 안돼. 내기를 걸었다니까?
    * 알았어. 알아봐서 조만간 메일로 날려줄께.

3. 참 황당한 질문에 황당한 전화를 받았다. 잊을만 하면 메일에, 전화로 꼭 잊지 않게끔 해주는 친구.
    고등학교 동창생이다. 학창시절에는 그리 친하게 지냈던 기억이 없는데....
    매년, 잊지 않고 연락을 취해주는 참 고마운 친구이기만 한데, 난 아직 생활에 뭍혀 그를 잊고 지낸다.
    홍콩에, 서울에, 그리고 미국에... 자신의 자회사를 두고 지내는 친구이기에
    그저 초라한 내 모습을 무시할 만도 한데....
    꼬박 챙겨주는 그가 그저 고맙기만 할 뿐....
    정말 바쁘겠지만, 내가 가기는 아마 죽어서도 힘들것 같고, 자네가 함 다녀 가시게.
    제주 원시인 마음 가득 담아 막걸리 한 사발 거나하게 쏠테니까!

4. 9시간동안, 말 한 마디 없이... 정말 지루하고 짜증나고.... 힘들다.
    잠시지만, 친구덕에 쉴 수 있었고... 큰 소리로 웃을 수 있었다.
    그의 사는 모습이 그림으로 그려지고, 그 그림으로 인해 가슴 한 편이 따뜻해졌다.
    그리고 원기회복. 오후들어 지근덕하게 내리기 시작한 빗님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북측구역 모두 즐겁게 예초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고맙네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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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니 F-88 카메라는 삼각대에 세우고, 그리고 그 앞에 모델삼아 무릎을 굽혔다. 나는 너를, 너는 나를....ㅎㅎ

예초작업을 진행하기 이전의 모습... 안 그래도 왜성대목에 접붙인 극조생에다가 아직은 어린 나무라 키가 크지 않은데, 망초(여기서는 천상초라 부름)의 키높이가 과수높이까지 자라고 있다. 햇빛도 경쟁하고, 양분도 경쟁하고... 베어냄으로써 그 두가지 문제점을 해결함과 동시에, 양호한 유기질을 공급하는 효과도 있으니...

조금 가까이서 본 예초전 모습

아무래도 남쪽에다 극조생이라 과일이 커가는 속도가 빠르다. 일반 조생에 비해 훨씬 커 버린 밀감이 탐스럽다. 올해는 어떻게 해서든 곱게, 더 맛있게....

요놈은 또 뭐야? 무슨 나방종류겠지? 농업은 종합적 지식을 필요로 한다. 웬만한 전문가는 흉내 낼수도 없을정도로.. 고도화된 전문영역이다. 그 농업을 이끌어야 할 우리들... 과거 무대뽀식에서 벗어나 보다 정밀하고 과학적인 농업생산이 필요한 시기다.

지치기도 참 많이 지친다. 그냥 앉아 있어만 있어도 좋을 말 벗이라도 있으면 그래도 덜 지루하고 덜 힘들텐데... 아~~ 이럴 때 모르는 이라도 좋다. 메시지 한 통이라도 있다면, 웃으며 힘 낼 수 있을것도 같은데...ㅎㅎㅎ.

잠깐 틈을 내서, 쉬는 김에 폼이라도 좀 잡아보면 덜 힘들까? ㅎㅎ

다시 시작하자. 아무튼 어떻게 해서든 북측구역만이라도 끝을 내야 내일 작업이 원만해 질 테니...

으라차차.... 힘을 내서...

그래도 예초작업을 마쳐 놓으니 과수원 전체가 참 예쁘다. 그 안에 파뭍혀 정신없이 작업에 매달릴때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지만, 이렇듯 작업을 마치고 나면, 저절로 입가에 웃음이 핀다.

마치, 어느 부잣집 예쁜 정원같지 않은가.

이 기분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힘들고 고된 작업이 끝남과 동시에 눈앞에 펼쳐지는 그 결과물, 그리고 땀과 빗방울에 흠뻑 젖었지만, 가슴속 저 깊은 곳까지 스며드는 상쾌함 시원함.... 그래서 농사를 짓는다. 약간의 고된 노동에 몸은 조금 피곤하지만, 마음은 그저 상쾌하기만 한 이 맛에...

볼품없이 나 뒹구는 수돗가도 그저 예쁘기만 하다.

비록 땀방울과 빗방울로 범벅이 되어 버려, 속옷까지 완전히 흠뻑젖어버렸지만, 전방에 삼각대를 세우고 그를 향해 한 껏 폼을 잡았다.

내 블로그를 채우는 대부분의 사진들은 이렇게 찍은 것들이다. 혼자서 별 별 쑈를 다 부리며...ㅎㅎ

니콘 D-80 카메라를 들고 한껏 폼을 잡은 내 모습을 찍어버린 쏘니 F-88 똑딱이가 삼각대 위에서 나믈 향하고, 난 니콘 D-80으로 그 녀석을 잡았다.

나는 너를, 너는 나를.... 타이머가 동작하고 있는 모습이 찍혔다. 그러고 보니 자탄풍, 자전거 탄 풍경의 나는 너를, 너는 나를이라는 노래가 절로 흥얼거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