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농부의 세상

그만 돌아오세요. - 772(천안)함 아직 임무수행중인 그대들이여 -

금오귤림원 2010. 3. 31. 00:46

내 나이 17에, 군복을 입었었습니다. 

'초도보급품'이라는 말과 함께,
차갑기만 한 침상, '3선정렬' 구령이 떨어지면,

왼편가슴 호주머니에 박힌
하얀색 하후생계급장이,
왼쪽어깨에 있던 '301학군단' 마크가

그리고 또 다른 어깨의 '조국근대화의기수' 마크가
바르르 떨었었습니다.

안동 36사단으로 향하는 단칸짜리 열차에 실려
매 여름방학을 각개전투, 분대전투,
분대장이 되어 '돌격 앞으로'

위장크레용 얼굴에 두르면
까아만 밤 하얀 달빛에
유독히 빛나던 친구의 또 다른 하얀 이.

그렇게 야간분대전투 끝날무렵엔
8부능선넘어, 윤시내의 노래가
친구의 몸짓과 더불어
그 능선을 넘었었습니다.

그렇게 3번의 병영훈련과 더불어
5관구사령부 교육사열을 3번 거치고서,

하얀 갈매기에서 파란갈매기,
그리고 빨간 갈매기 계급장을 넘어

졸업 3일전
비로소 노란 갈매기 계급장이 가슴에 맺히던 날,

어울리지 않는 군정복을 입고
그렇게 군문에 들어섰죠.

 

바다위에서, 다시 5년을 지냈습니다.
중갑판 '유도조종실'....
거기가 내 근무지였습니다.

함수 수면하 3분대 침실에
당직 근무 마치고 돌아와
흔들리는 그 좁은 침대에 누우면,
찰랑거리는 파도소리가 자장가가 되었고,

그렇게 5년의 세월이 지나
군문을 떠났는데....

가슴이 터억하니 막혀 버립니다.
숨조차 쉴 수가 없습니다.

아련했던 그 시절로 인해
그 많은 시련과 사연들로 인해
표현 할 수도 없는데.

그대 들은 말 없이
그렇게 바다속에 남아 있구려.

난, 그저 현실의 삶에 묶여
그저, 그저
안타까워할 수 밖에 없고,

그저, 그저
가슴아파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만, 돌아 오세요.
그만, 돌아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