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농일지

2016.12.15 (목) 청주.대구 흐림. 대구 수성못호반, 중년의 두 남자 호젓한 데이트

금오귤림원 2017. 4. 20. 03:20

2016.12.15 (목) 청주.대구 흐림. 대구 수성못호반, 중년의 두 남자 호젓한 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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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의 머릿결도 희어졌습니다. 전형적인 학자의 모습.
그 역시 갓 시작한 묘목사업과 여전히 공부하는 일들로 일정이 꽈악 차여 있을텐데도 불구하고, 오후 일정을 물리친 채 오롯히, 멀리서 찾아온 친구에게 할애해 주었습니다. 
 
대구시외버스터미널... 
 
학창시절, 대운동장 면적이 일만평이 넘었을겁니다. 그 바닥면적과 어림 견주어봅니다. 청주에서의 쇼핑센터건물에서도 조금 느꼈습니다만, 웬걸요. 인근의 어지간한 곳에서는 카메라 앵글속으로 들어오지 않을정도로 거대한 맘모스 빌딩... 
 
왜 그렇게 커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건물을 한 번 통채로 삼켜보고 싶어 주변을 배회하다 만난 도심속 좌판. 그리고 그 안에, 제 주 작목인 감귤이 포진하고 있습니다. 
 
저 건너편에 동대구역의 커다란 간판이 보입니다. 
 
17살, 여름방학엔 어울릴 듯 어울리지 않는 군복차림의 소년들 한 손엔 묵직한 M1 소총 한 자루가 들려 있었고, 안동 36사단으로 향하는 단칸짜리 열차가 구미역에서 출발하여 그 곳을 통과했었습니다. 그 안엔 물론 350여명의 동기생들이 타고 있었구요. 그렇게 2년간, 여름방학은 안동36사에서 병영훈련으로, 그리고 마지막 1년은 배정받은 군부대, 저는 해군교육단에서 보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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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직전 우리들은 육.해.공군 기술하사관으로 임용을 했고, 졸업과 동시에 입대. 아니, 정확히 말하면 소집명령을 받아 입소를 했죠. 복무 중간에 다시 현역으로 편입되기도 하는 등... 그렇게 뿔뿔이 각 자의 영역으로 흩어져 복잡한 사회속으로 스며 들었습니다. 
 
30여년이 조금 지나서야 그 때 만났던 친구를 만났습니다. 우리 농업현장과 정책, 연구, 실행 등의 파트에서 어느정도 역할을 하고 있던 친구. 지금은 독립하여 사업을 꾸리고 있다 합니다. 점차 발전해 가겠지요. 
 
수성못호반으로 안내를 합니다. 한 귀퉁이에 갓 마련한 듯한 포터 더블캡을 세워두고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한 바퀴를 돌며 데이트를 시작합니다. 
 
학창시절의 이야기, 군 시절의 이야기...
그리고 현업에 대한 이야기... 공부에 대한 이야기... 
 
인근의 코피숍에 앉았습니다. 허니버터를 바른 빵 몇조각과 라떼 두 잔.
길고 긴 이야기 속에, 내가 알고 있는 몇 몇 분들의 이야기도 나오고... 
 
조금씩 제 색깔을 잃어가고 있는 수양버들 한 끝을 잡고는 느닷없이 식물휴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합니다. 최근들어 나무의 휴면활동에 대해 지대한 관심과 공을 들이고 있다며 꽤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두 중년 사내의 데이트치곤 참 멋.지.지 않나요?
술 한잔이 없어도, 이렇듯 멋.진 데이트를 즐길 여유가 우리에겐 있었습니다. 
 
양형아!
멋진 데이트 즐거웠고 고마웠네. 
 
다시 보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