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농부의 세상

[ 한라산 남쪽 끝자락 오렌지장원별장과 부근 계곡 ]

금오귤림원 2007. 4. 10. 22:20

한라산 제1횡단도로. 그보다는 5.16횡단도로라는 명칭이 익숙한 그 도로가 끝나가는 한 켠에
비록 낡아버리고 손 보지 않은채 방치되기는 했지만, 지날 때 마다 눈길을 끌던 건물이 있었다.

형편이 된다면, 매입을 하던(???) 임대를 하던 나름으로 욕심이 나던 그 건물과 함께,
보너스로 주변 경관을 둘러볼, 그런 기회가 너무도 우연히 내게 왔다.

"지난 번에 고랐던 그 껀 양. 계약 핸 마씸. 어떵 가그네 함 보쿠가?"

"함께 가도 괜찮으꽈."

"가건 말건 그거야 무슨 상관이꽈마는..."

"나야 뭐.. 바람도 쐴겸 좋추마씀."

"겅허민 옵서. 바람이나 쐴 겸 해그네 갔당오게 마씀."

"겅 헙주. 호끔 지둘립서양. 곧 가쿠다."

동부산업도로..그리고 남조로...이미 익숙한 길이었다. 그리곤...
참 많이도 쏘다닌 덕에, 웬만한 길은 모두 익숙한 길이었건만 어느 한 지점에서 방향을 바꾼
자동차 차창 밖 풍경이 낯설고, 길 또한 낯 설다.

"애고. 이 길은 살당봐도 처음이우다 예."

"아니, 무사 이길을 모를말이꽈. 길 난지가 언젠데 마씀."

"게메 양."

산 간 길은 대체로 숲의 규모가 너무도 커 어지간해선 한라산의 모습이 잘 드러나 보이지 않건만,
이 길에선, 남쪽의 바다며 북쪽의 한라산, 그리고 그 어염의 몇 몇 오름들까지 시원스레 잘 드러난다.

한라산.

제주의 어느곳에서건 그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이 길에서 보는 한라산의 모습은 사뭇 다른 모습이다.

서쪽 군산이 위치한 마을에서 보면, 정갈한 여인네의 고운 자태를 느낄 수 있었던 반면,
이 길에서 보는 한라산의 모습은, 건장하고 육중한 사내가 두 팔을 한 껏 벌려 섬 전체를
아우르는, 육중한 안정감과 경이로움, 그리고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언제가 되었던, 혼자만의 시간이 허락될 때, 이 곳 어느메쯤의 오름에 올라 그 모습을 담아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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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아마도 그 당시, 흔히들 말하는 "안가" 정도의 역할을 했음직 하다.
한라산 국립공원안에, 그 정도 넓이의 평탄한 택지를 조성할 수 있었던 모습을 보면
어찌 범부들이 그 한적한 환경을 꾸밀 수 있단 말인가.

세월이 좋아, 지금은 어느 개인의 소유라 한다. 그 별장 바로 옆으로 제주만의 특색을 간직한
거친듯 하나 예쁘장한 계곡이 있다.

대부분의 계곡은 부드럽지만 험하고, 웅덩이가 있지만 물은 많이 고이지 않으며, 떨어진 나뭇가지와
낙엽들로 인해 지저분하기 쉽상인데,

맑다. 너무도 맑아 물 밑의 자갈들이 보이기도 하고, 웅덩이 아니 못이라 해도 좋을 듯 하다.
크기도 적당한데다 깊이 또한 적당한, 어쩜 선녀놀이라도 할 수 있을정도의 못이 거기에 있었다.

바위 틈 사이사이 또는 그 매끄러운 바위위에서 꽃을 피운 분홍빛 진달래와 맑은 못의
조화는 한 동안 발걸음을 붙들어 매기에 충분했다.

그나저나...
어찌 어찌 인연이 될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