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멋/제주의 오름

[2006.05.13 (토) 맑음] 조근대비악

금오귤림원 2006. 5. 13. 21:47

조금 늦은시간에 잠이들었었나? 부산한 시끌거림에 이끌려 부시시한 눈을 부비니, 아고, 벌써부터 옆집 아주머니와 집사람은 복장을 다 갖췄다.

마지막이라나? 이제 고사리 꺽는것도.... 예의 독특한 고사리 복장으로 이미 커피 한 잔씩은 마신 모양이다. 낯 씻을 겨를도 없이 주섬 주섬 옷을 챙겨입고 나서니...

"오늘은 어디로 갈꺼라?"
"게메...알바매기 가잰 이 새벽까정 인터넷 뒤져신디...어떵이라!"
"서쪽으로 가게. 지난 번 고사리 꺽던데 가민, 그기도 오름 몇 개 이성게."

못 말리는 아짐씨덜...아~~효!!! 할 수 없지 뭐. 아짐씨덜 말씀을 따라야지...힘이 있나? ㅎㅎ.

"겅 헙서!"

차 키이를 들고 밖으로 나가려니,

"다마스로 가게"
"아니우다. 걍 캐피탈로 가도 될거 닮은게 마씸."

매 주 그 비싼 휘발유 없애는게... 많이 미안스러웠던 모양이다.

"요번까지는 공짜기름이라 상관없수다. ㅋㅋ."

사실, 포인트...10만점인가? 그 이상이었을것이다. 그로 채운 연료니...공짜 맞잖아. 시내를 관통하여 빠져 나갈까 하다가, 생각을 조금 바꾸었다. 연두빛 여린 햇살에 마치 어린 아이마냥 좋아하던 모습들이 생각나 산천단을 거쳐 관음사길로 들어서 어승생을 지나 산록도로로 내 달렸다. 마침 이른 시간이라 차량흐름도 원활하고... 냅다 쏜살같이 내 달으니

"살살 다뤄어어~~멀미 난다니까아?" 제일 큰 형님이 속 마음을 들어낸다.

"아싸아아~~난 신난다. 시원하기만 하구만....ㅎㅎㅎ" 맞 받아 치는 둘째....

그러고 보니 집사람은 그 중 막내다.

"재잘 재잘, 조잘 조잘, ......"

아니, 나이는 도대체 어디로 먹는겨. 40을 넘어 지천명이 코앞인데.... 어디에도, 어른스러운 점잖음과 낯 간지런 계산은 없다. 그저 사람의 정으로, 어린시절 소박하기만 했던 친구로 그렇게 재잘거리는 아줌마들의 모습이 좋고, 정겹기만 해
나 까지 흐뭇해진다. 주고 받는 이야기에 잠시 정신을 팔다보니 제2산록도로 진입로를 지나 버렸다.

"에이...또 지나버렸네. 지난 번에도 그러더니...ㅎㅎㅎ"

동광톨케이트에서 U Turn 하여 광평리 복지회관 우측 시멘트길을 따라 길 끝까지 가서 차를 세웠다. 순식간에 고사리 전투태세가 완비되는 듯 싶더니 눈 감빡하는 순간, 벌써 숲속으로 모습을 감춘다.

"조 앞에 있는 오름 이름이 뭐지?"

연신 지도를 펴 놓고 되 짚어 보지만, 도시 종 잡을 수 없다.

"에이, 나침반을 하나 사던지 해야지 이거야 원~~ 독도법도 다시 공부해야 하나?"

그냥 희미하게 나마 사람 지날 정도의 길을 따라 들어가니 험상스런 경고판이 하나 나타난다. "경고. 이 곳은 나인브릿지 골프장 사유지이므로 출입을 엄격히 금함. 어떤 사고에 대해서도 민.형사상 책임을 지지않음..." 어쩌구 하는 내용이었다. 순간 떠오르는 어느 영화의 한 장면, 아, 결국 우리나라도 이렇게 변해가는구나.

어린시절, 온 들판은 모두가 내 것이었다. 내 마음 내키는 대로 돌아다니며 소몰이며 주넹이잡기 등 어느 한 곳 막힘이 없었는데.... 이젠 그런 자유마저 빼앗겨 버리는구나. 그러거나 말거나 들어섰다. 20여미터쯤 더 들어갔었나? 말끔하게 정리된 잔디밭이 눈에 들어온다. 캐리어 전동차 서너대에 멋쟁이 아주머니들의 재잘거림과 T-Shot 포인트....

쾌청한 하늘과 넓푸르고 정갈한 잔디밭, 한가로운 여인들의 조용한 재잘거림. 그리고 티셧! 한 폭의 그림으로 어찌 그 모습을 나타낼 수 있을까만은 바라보는 내 마음은 알 수 없는 생각에 이내 발걸음을 돌렸다. 압도해 버리는 분위기에 더 이상 앞으로 나가기 어려웠다. 그 쯤 어디로 해서 저 오름을 오를 수 있는 길이 있을것도 같건만....

"저 예! 혹시 저 오름 이름 알아지쿠가?"
"어떤 오름 마씨. 저 오름 말이꽈? 그거 영아리 아니꽈!"
"아, 예. 저 오름이 영아리 오름 마씨? 고맙수다 예!"

되 돌아 나오는 길에 마주친, 그 새 한 아름씩이나 꺽은 고사리 등짐을 진, 조금은 연세가 있어보이는 아주머니께 건넨 말씀에 친절히 일러 주신다. 다시 지도를 펴치고 현재 위치와 비교해 가며 연신 되 짚어본다. 저 오름이 왕이메. 고 앞은 괴수치, 그 앞은 돔박이, 그 건너 저 편에 폭나루, 괴오름, 빈네오름, 다래오름, 영아리 아래로 하늬목이, 마복이, 어오름, 아하 거지 한라산 만큼이나 완만하게 웅장한 저 오름이 한대오름인가? 그 앞으로 이돈악, 돌오름....그 뒤로는??? 삼형제오름인가?

결국 오름을 오르는건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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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 쑥 채취. 오늘 오후는 쑥 찻잎을 만들겠단다. 녹찻잎을 덖어내듯, 똑 같은 과정을 거쳐 집에서 만든 쑥찻잎은 그 맛이 일품이다. 장에도 좋은 효과를 낸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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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에 조근대비오름을 올랐다. 정상에서 바라본 남사면 아래 드넓은 개간지와 저 멀리 보이는 군산, 산방산, 단산, 모슬봉 등의 풍광이 한 눈에 들어오며, 조금은 답답하던 가슴을 시원하게 쓸어버린다.

몇 컷의 파노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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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참에 한 바퀴 돕시다."

제2횡단도로쪽으로 차 머리를 돌려 조금은 천천히 달렸다. 오른편으로 제주녹차 시음장이 보인다. 망설일 이유가 있었던가! 작년엔...일정액을 내고 여린 찻잎을 무한정 따기도 했다는데....

정갈하면서도 편안한 차림의 주인이 부드러운 미소로 내방객을 맞는다. 몇 잔의 녹차와 담소.... 그리고 무식의 일면을 깨친 후(우전, 세작, 중작, 대작; 녹차의 종류-우전, 세작만을 고급차로 분류, 각기 5일 정도의 시일을 두고 수확을 한다 함.) 달랑 2,000원짜리 녹차 꾸러미를 사들곤...

참 오랫만이다. 1100고지... 한적한 시원함을 만끽하며 돌아오는 길은 더 할 수 없는 싱그러움을 가슴가득 채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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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 아낙은 땅 바닥에 주저앉아 뜯어온 쑥을 다듬느라 정신이 없다. 벌써...7시간을 훌쩍 넘기고 있는데....

배고픈데...밥 안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