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농부의 세상

[스크랩]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 12년 후의 멕시코...

금오귤림원 2006. 9. 12. 17:24
[한미FTA 협상 이대론 안된다] 7. 미국과 FTA 맺은 외국의 사례
입력: 2006년 07월 14일 18:09:57
미국·캐나다·멕시코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을 체결한지 12년이 지난 지금 멕시코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나프타발효 직후 멕시코에서는 실업률이 낮아지고 외국인 직접투자(FDI)가 3배 가량 폭증했다. 미국과의 교역량도 1993년에 비해 약 180% 정도 늘었다. 각종 거시 경제지표는 멕시코가 미국과 담을 허문 뒤 매력적인 투자처로 비쳐졌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화려했던 초기 실적은 ‘빛좋은 개살구’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외국 자본은 중국이라는 더 큰 시장으로 빠져나가고 있고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농민들은 고향을 버리고 도시로 떠나거나 미국 국경을 넘고 있다.

◇대선 판도 좌우한 나프타=나프타는 지난 2일 치러진 멕시코 대선에서 주요 쟁점 중 하나였다. 집권 국민행동당(PAN)의 펠리페 칼데론 후보에 맞선 좌파 민주혁명당(PRD)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후보는 미국과 농업 부문을 재협상하겠다고 공약했다.

유권자의 표심은 정확히 반으로 나뉘었다. 상대적으로 부유한 중산층이 칼데론 후보를 밀었고 농민, 저임금 노동자 등 빈곤층은 오브라도르 후보에게 투표했다. 두 후보간 격차는 고작 0.57%포인트. 양극화의 길을 걷고 있는 멕시코의 오늘을 투영한 듯한 결과다.

농업부문 재협상은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2003년 감자·밀·사과·양파 등 21개 농산품에 대한 관세 철폐를 앞두고 수도 멕시코시티에선 24개주에서 올라 온 농민들이 농업 조항의 효력 동결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당시 이들이 “나프타는 곧 죽음”이라고 외쳤던 까닭은 각종 통계에서 드러난다. 나프타 발효 이후 2002년까지 멕시코 국내총생산(GDP) 중 농업 부문의 비중은 7.3%에서 약 5.0%로 떨어졌다. 멕시코 국립자치대학 연구에 따르면 농업을 포기하고 도시 빈민으로 전락하거나 미국으로 밀입국한 인구는 1천5백만여명에 달한다.

2008년에는 멕시코의 주식이나 마찬가지인 옥수수와 콩의 관세가 철폐된다. 옥수수 수입이 이미 112% 증가한 상황에서 이는 3백만 멕시코 농민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수십만명의 농민·노동자들이 오브라도르의 대선 패배에 쉽게 승복하지 못하는 이유다.

◇미국 기침에 감기드는 멕시코=당초 멕시코가 미국과 나프타 협상을 시작한 주목적은 단순한 시장 개방이 아니었다. 85년부터 시작된 무역 자유화 정책으로 멕시코 시장은 상당 부분 개방된 상태였다. 카를로스 살리나스 당시 대통령은 외국인 직접투자(FDI) 유치를 슬로건을 내걸었다. 나프타를 맺을 경우 미국 시장에 진입하기를 바라는 외국 자본까지 멕시코로 끌어들일 수 있어 경제성장이 가속화된다는 논리였다.

실제 94년 나프타 발효 이후 FDI는 급증했다. 93년 43억8천9백만달러였던 FDI는 94년 1백50억6천6백만달러로 1년사이 3배 이상 증가했다. 이중 대부분이 미국 자본이다. 94년에는 전체 FDI의 46%, 2001년엔 78%를 차지했다.

외국 자본이 국경 근처 수출품 가공·조립 공장인 ‘마킬라도라’에 지사를 열면서 일자리가 창출됐으나 임금은 낮았다. 98년 미국 노동자의 최저임금이 1시간당 5.15달러였던 반면 이곳 노동자는 하루에 3.4달러를 받았다. 그나마 2000년대 초반부터 멕시코에 진출했던 다국적기업들은 생산비가 저렴한 중국으로 떠나기 시작했다. 2002년 한해 동안만 공장 5,000여개가 문을 닫았고 2000년 이후 25만여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멕시코 수출입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절대적 위상도 멕시코 경제를 외부 충격에 취약하게 만들고 있다. 80년 멕시코의 대미 수출 비중 64%였지만 2000년 89%까지 증가했다. 같은 기간 수입도 61%에서 73%로 늘었다. 대미 수출은 점점 늘어 2006년 현재 90%를 돌파한 상태다.

멕시코 경제는 사실상 미국에 종속됐다. 미국 경기가 부진해 수요가 줄면 멕시코의 수출 물량도 함께 줄어든다. 이는 다시 제조업의 붕괴와 실업으로 이어진다. HSBC 수석 이코노미스트 조나단 히스는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대미 의존도 심화 현상이 궁극적으로 멕시코 경제의 운명을 결정짓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나프타 효과 없었다”=세계은행은 지난 2003년 나프타 10년을 점검하는 보고서에서 나프타가 멕시코 경제에 미친 이득이 미미하다고 결론내렸다. 수출과 외국인 투자가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대부분 나프타 가입 이전인 85년부터 단행된 개혁조치 때문이라는 것이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보고서도 나프타가 실질적인 고용증대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수출 확대로 인한 일시적인 효과는 미국 경기가 침체되고 값싼 중국 제품과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사라지기 시작했고 이때문에 지난10년간 미국과 멕시코의 소득격차는 더욱 커지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2002년 미국 워싱턴 소재 우드로윌슨 센터는 나프타가 미친 영향에 대해 멕시코인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응답자의 29%만이 나프타가 멕시코에 이득이 됐다고 답했다. 33%는 오히려 해가 됐다고 말했고 33%는 나프타 이전과 이후에 별 차이가 없다고 응답했다. 12년 전 정부가 약속했던 장밋빛 ‘멕시칸 드림’은 미국에 대한 종속만 심화시킨 채 여전히 실현되지 않은 꿈으로 남아있다.

〈최희진기자 dai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