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멋/제주의 오름

[2006.05.27 (토) 흐림] 군산

금오귤림원 2006. 5. 27. 22:59
아이들과 함께 하고자 했던 가족 등산 계획이 취소됐다. 성판악 코스로 해서 정상까지, 그리고 하산길에 사라오름도 들러 올 요량이었지만, 어제 저녁 늦게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아침까지 뽀오얀 안개비를 뿌리고 있다.

큰 녀석은 좋아한다. 마침 휴일을 맞아 서귀포에서 친구가 놀러 온다고, 새벽등산을 다녀오면, 너무 지쳐서 친구와 놀 수 없다나? 이젠, 아이들도 조금씩 자신의 주장을 내 놓기 시작한다. 바로 작년까지만 해도 적어도 아빠앞에서 자신의 주장을 섣불리 내세우지 않았었는데... 한 편 서운하기도 하고, 또 한 편으론 대견하기도 하고...

아직은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이들은 그저 어른들의 세계라고 단정짓고는 끝내 자기들 세상속으로 받아 들이지 않는다. 하긴, 어디 아이들 세상뿐이겠는지.. 어른들 역시 자신들만의 카테고리속에, 두터운 담장을 쌓아 올리고는 다른 생각과 다른 환경을 쉽게 받아 들이지 않으며 오히려 배척하려 하는 세상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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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가 가까와서야 주섬 주섬 옷가지를 챙겨 입고는 벌써 했어야 할 일을 너무 늦게 시작했다. 작년말과 연초, 감귤 수확때 사용한 콘테이너 반납작업... 다마스 차량에 옮겨 실기 시작하니 예순 여섯개나 들어간다. 허 그 놈 참... 보기보단 충실한 일꾼일세 그려. 출발을 하려니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어제 빗줄기에 뭔가가 잘 못 되었나? 할 수 없지 뭐! 밀어! 다행히 약간의 경사로가 있어 간신히 시동을 걸고는 처가집으로....

콘테이너를 창고에 반납한 후, 장인 어른을 모시고 집 앞 군산으로 향했다. 집사람은, 장모님과 함께 담가둔 메주로 된장을 담근다고 했다.

참 오랫만이다. 중학시절이었던가? 아니 초등학교? 아니 아니, 중학교 시절인것 같다. 안덕계곡을 건너 대평리, 우리 어릴적엔 아마 난드르라고 했던것 같다. 그 길로 들어서 대평리 조금 못 미쳐 왼쪽으로 난 시멘트길로 찻머리를 들이 밀었더니 위태하리만큼 경사각이 큰 길 끝에 군산 서봉이 보인다. 대평리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길이라 한다.

아! 군산 정상엔 봉우리가 두 개나 있었던가? 발아래 깊게 패인 계곡을 질러 동쪽으로는 행정구역상 서귀포시, 그리고 서쪽으로는 남제주군 안덕면이라고 동행한 장인어른께서 일러주신다. 동봉은 서귀포 관할영역안에, 그리고 서봉은 안덕면 관할영역안에 그렇게 두 개의 봉우리가 있었다.

동봉 정상에 올라 남쪽으로는 태평양 넓푸른 바다가, 그리고 북쪽으로는 푸르디 푸른 제주의 깨끗한 자연이 있어야 함에도, 오늘은 그 모습을 허락하지 않는다. 뽀오얀 안개비와 운무가 산 허리를 휘감아들고 서서히 산 정상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

耽羅紀年에 따르면, 고려 목종 10년에 7일간의 雲雨중에 이 산이 만들어졌는데, 중국 곤륜산(崑崙山)의 왼쪽 봉우리가 메후리(회오리바람)에 쫒겨 7일동안 날아와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도 전한다는 말씀을 해 주신다.

오름이면 오름마다, 산이면 산마다 저마다 도특한 이름과 함께 재미있는 민화나 전설은 때때로 작은 웃음을 머금을 여유를 준다. 얼마나 재미있던가. 구태여 진실여부를 따질 필요도 없다. 이름과 이야기가 만들어지던 그 시절, 당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소망과 두려움, 금기 등의 생활상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는것만큼은 진실이 아니겠는지. 그것이면 족하다. 전설의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 한들 어떤가.

하산길은 대평리로 들어 중문 예래동을 거쳐 군산 기슭을 따라 한 바퀴 돌아 가 보자시는 장인어른의 말씀에, 오랜 제주생활에도 불구하고 제주식 생활관습에 익숙지 못한 사위에 대한 보이지 않는 배려가 느껴진다.

대평리 역시 동난드르와 서난드르로 나뉜단다. 동난드르는 서귀포시 관할, 그리고 서난드르는 안덕면 관할. 토양이 비옥하고, 햇살이 따사로와 농사짓기는 그만이라고 하신다.

예래동 마을로 들어서 꼬불 꼬불한 마을 안길을 타고 진행하다보니 그리 크지 않은 화단에 활짝 핀 황금빛 꽃들이 너무 예쁘다.

군산 둘레를 빙하니 한 바퀴 돌아 집에 들어오니, 장모님과 옆지기는 담갔던 메주를 꺼내 깨끗이 씻은다음 으깨고 부수어 된장 담그기가 한창이다.
안덕계곡에서 대평리 방향으로 약 1.8Km 정도 진입하면, 좌측으로 뉴제주펜션 안내 표지목이 선 시멘트길이 군산 정상 바로 아래까지 이어진다. 그 입구에서 바라본 대평리 마을과 태평양을 향한 바다

진입도중 바라본, 군산의 서쪽에서 동쪽으로 바라본 서봉의 끝은 운무에 가렸지만, 남사면(우측)으로 애기업게돌이 보인다.

뉴제주펜션 안내 표지목으로부터 약 1Km 정도 올랐을까? 경사가 매우 가파라서 차량으로 오르기조차 두근거렸지만, 바로 정상아래까지 이어졌다.

차량을 세운 후 산 정상(서봉, 사자암)까지 이어지는 계단, 왼쪽으로는 조그마한 오솔길이 나 있다. 동봉으로 향하는 길로 아기자기한 산책코스로 생각들만큼 상쾌하다.

동봉 바위위에 날아든 벌 한 마리, 상당히 높은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날아와 있다. 그런데, 돌위에도 꿀물이 있을까? 무엇을 찾는지 사뭇 궁금하다.

예래동쪽에서 군산 정상까지 오르는 등산로, 우리가 올랐던 방향과는 정 반대 방향이다. 동봉 꼭지점에서 아래로 내려다 본 모습

예래동쪽에서 산 정상부에 이르는 등산로로 산 정상 바로 아래모습

동봉에서 바라본 서봉우리 모습

위는 산 정상부에 서식하는 여러 식물들
동봉우리에서 내려와 서봉우리를 향하던 중 서봉우리의 남사면쪽 모습

산 정상부에 설치된 삼각점

서봉우리에서 바라본 동봉우리 모습

서봉우리 바로 아래, 곡괭이 자국이 너무도 선명히 남아 있는 땅굴. 이런 땅굴은 제주 전역에 걸쳐 많이 발견된다. 이 곳 군산역시 산 중심부에 미로형태로 만들어진 진지동굴이 있다. 초등학생시절,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호기심에 들어가 보았던 어느 동굴은 동굴 내부의 어느 부분에 철제문과 자물쇠로 잠겨진 형태도 있었던것 같은 가물거리는 기억이 있다.

서봉우리 바로 아래에 있는 진지동굴, 너무 어두어 들어가 볼 수는 없었지만, 서봉우리 기슭 북쪽에 입구가 있는것으로 보아 남쪽으로 뚫려 멀리 태평양을 관측할 수 있는 일종의 관측소 진지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기회가 된다면, 헤드랜턴이라도 마련하여 다시 한 번 확인해 보고 싶다.

서난드르에서 동난드르로 들어서기직전, 북쪽으로 바라본 군산의 모습은 뽀얀 안개비로 희미하다. 이 쯤에서 보면, 아마 동봉과 서봉 모두 볼 수 있어 마치 용의 머리에 두개의 뿔이 돋은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안덕계곡에서 대평리로 향하는 길을 따라, 대평리 입구. 길게 드리워진 벽화가 인상적이다.

예래동 마을회관앞에 조성된 꽃밭이었던가? 그리 크진 않았지만, 유독 눈에 띄는 색채로 관심을 끈다.

군산 정상(동봉)에서 찍은 360도 파노라마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