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멋/제주의 오름

[2006.05.20 (토) 맑음] 왕이메오름

금오귤림원 2006. 5. 20. 11:46
탐라국시대, 고량부 삼신왕이 이 곳 왕이메 오름에 올라 삼일간 제사를 지냈다 하여 왕이메라 이름 붙였다 하던가!

너무 오랫동안 삐딱한 자세로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고개를 조금 돌릴 때 마다, 고개 왼편이 무척 아프다. 마치 목에 기브스를 한 양, 좌,우로 30도 정도를 틀어 양 옆을 보기가 무척 힘들다. 어쩔까. 하루쯤 쉬어갈까?

무슨 뚜렷한 목적이 있어 오름을 오르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오래전부터 마음 먹었던 일을 어느날 문득, 아무 생각없이 오르기 시작했다. 원체 아는것이 없었기에 무작정 오르다 보면, 어느 한 순간 적어도 한 가지 길은 보이겠지... 그랬다. 그렇게 시작한 오름산행은 이제야 조금, 정말 아주 조금 무언가 보이고 생각할 틈을 만들어 주고 있다.

다른이들은, 오름에 대해 세세한것들까지 너무도 자세히 알고 있었다. 오름의 높이며 지형, 위치, 오름내의 동.식생, 야생초들의 이름, 전설, 이름의 내력.... 처음, 그러한 것들에 대해 꼭 알아야 하겠다는 그런것들조차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저 오르다보면, 무언가 보이겠지. 그것을 보게 되는 순간, 그 순간이 내겐 처음이 될 것이라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 그 사실들을 비로소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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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산행은 동쪽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요즘은, 물론 매주 동행했던 아주머니들의 고사리 꺽을 욕심 덕이긴 했지만, 서쪽의 오름들을 둘러보고 있다. 지지난 주 서영아리 오름으로 시작해서.... 그 때의 주변 오름들은 정말 알 수 없었다. 지도상에 표시된 오름의 이름들과 위치는 어느 오름이 어느 오름인지 도무지 분간할 수 없었다. 오늘에서야 비로소, 그 오름들의 위치와 모습들을 보게 된다.

왕이메 오름의 정상에서, 비로소 저 끝 삼형제 오름에서부터 노로오름, 한대오름, 돌오름, 이돈악, 빈네오름, 다래오름, 족은 발이메오름, 발이오름, 폭나루오름, 괴오름.... 그리고 새우란, 복수초, 양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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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의 오름들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오르고 내렸던 탓일까. 정상으로 이르는 길은 누구라도 쉽게 찾아 오를 수 있었던 반면에... 서쪽의 오름들은 그 길이 너무도 희미하다. 지난 주의 어오름, 마복이(맞보기)오름, 하늬복이오름, 서영아리오름들이 그러했고, 오늘의 왕이메 오름 또한 그러했다. 희미한 길을 따라, 삼나무 죽은 가지와 가시덤불을 헤치며 들어서다보면, 이내 꽈악 막혀 버려 진퇴하기 조차 힘든곳에 머물길 몇 차레였던가. 울창하고 빽빽하게 들어선 나무와 덤불, 잡목들로인해 하늘을 바라볼 수도 없다. 길을 잘 못 찾았던가!

어느덧, 옆지기와 나는 어느 굼부리 안자락에 닿아 있다. 연 몇 일째 내린 비로, 고사리들은 통통하니 살이 올라 있지만, 대부분 그 어린 손들을 펴고 하늘을 향해 그리운 햇살을 한 껏 맞아 들이고 있다.

왕이메오름은, 몇 개의 봉우리와 더불어 또한 수개의 굼부리를 품고있는 복합형 화산체라했다. 그러나 오늘은 그 웅장하다던 왕이메 오름의 모습을 볼 수 없다. 워낙 울창한 삼나무와 소나무, 그리고 잡목과 가시덤불로 인해. 그 주봉의 정상에 섰으나 전체적인 모습을 바라 볼 수 없다. 아직은 모든것에 서툴러 삼신왕조차 신참내기 산나그네를 맞아들이지 않으시겠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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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전마을로 들어섰다. 예쁘장한 집이 몇 채 들어서 있는, 마을이라기 보다 자연에 뭍힌 어느 동화속 그림같은 풍경이 발길을 붙잡고 놓아 주지 않는다. 마악 지붕을 얹기 시작한 흙집의 모양은 이내 나그네로 하여금 주변을 한 바퀴 돌게 만든다. 어느양반일까. 저렇듯 멋들어지게 흙집을 짓고 있을까. 흙은 또 어떻게 구했을까. 제주의 흙은 대부분 화산회토라 찰기가 없어 흙집 짓기가 쉽지 않을터인데... 그 양반 참 재주도 있고 돈도 많은 양반인가보다....ㅎㅎ.

우연히...그가 집을 짓게된 내력을 엿볼 수 있었다.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고...왕이메오름에 대한 자료를 찾아볼 요량으로 인터넷을 뒤지던중.... 정말 우연일까. 그 흙집 쥔장이 될 분의 블로그가 눈에띈다. 아직 자세히 살펴보진 못했지만, 그의 흙집과 자연적 삶에 대한 멋스러움만은 조금 엿볼 수 있었다. 한 번쯤...그 쥔장과 한 번쯤 담소할 날이 있겠지...

서부산업도로에서 화전마을(나인브릿지골프장)입구로 들어서 바라본 왕이메 오름
주봉을 중심으로 북사면으로 오름. 북사면쪽의 경사는 비교적 완만하고 높이 또한 그리 높지 않아 정상까지의 오름에는 큰 힘이 들지는 않았으나, 길을 찾지 못함과 가시덤불, 울창한 숲 으로 인해 다소 애로가 있음.
호명목장 오른편으로 돌아 넓은 목장을 가로질러 오름의 아래기슭에 마련된, 아마도 목장용수로 쓰일까? 인공으로 만든 담수장.
아마도 담수장을 만들기 이전엔...우리 어릴적 쇠물통이라 했던가? 이 곳에서 소와 말들의 갈증을 풀어 줬으리라. 아련히...어릴적 추억을 더듬게 만들었다.
지난주와 지지난 주, 저 산기슭 어디메서 그렇게 헤매고 있었지. 가까이 서영아리오름과 멀리 마복이(맞보기)오름의 봉우리가 보이고...
드디어 오름을 오르기 시작하겠구나. 하지만 어찌 알았으랴. 이 좋은 길이 계속되지 않음을...
길을 잘 못들어섬이 어쩜 행운이었을까? 다수의 여린 드릅나무들이 초보 산나그네들을 맞는다.
아. 참으로 익숙한 향이네? 산초...제주말로는 제피낭이라 했던가? 강하고 독특한 향은 제주의 텁텁한 음식을 그나마 향기롭게 해주기도 하는데...특히 된장에 묵혀, 자리물회에 풀어 먹으면 여름철 무더위는 그야말로 저리가라였지...
드릅나무의 잎은 그리 독특하지 않다. 다만, 조금 가까이에서 바라보면, 잎이 돋은 가지의 마디 마디마다 상하로 규칙적으로 솟은 날카로운 가시와, 잎줄기에도 역시 규칙적으로 돋은 가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삼나무 숲에 울창했다면, 아마도 이러한 식물도 이 곳에선 자랄 수 없었으리라. 그나마, 누군가에 의해 삼나무 아래가지들이 정비가 되어 햇볕이 들 수 있었던 모양. 그 삭막한 숲토에서 생명을 키워간다. 부족한 햇빛을 많이 받으려 이토록 넓직한 잎을 키워낼까. 징그러울 정도로 커다란 잎에 나그네로 하여금 카메라를 들이밀게 한다.
어? 잎새에 새겨진 잎줄기 모양이 마치 연필로 데생을 해 놓은듯 선명하다. 이 들풀일까, 나무일까. 이름은 무엇일까. 어쩜 흔하디 흔한 모습일지 모른다.
정비되지 않은 삼나무 숲의 죽어버린 아랫가지들... 어휴...저 숲속을 어떻게 뚫고 나아갈까. 하늘은 고사하고, 햇 빛조차 들지 않았다.
우여곡절끝에 오른 주봉의 측량기준석. 이 표석이라도 있었으니 망정이지, 아마도 이것조차 없었다면, 주봉의 끝에 올라 있음조차 느낄 수 없었으리라.
하산 후, 중간지점에서 한 컷. 너무도 조용하고 평화로운 목장의 풍경넘어 멀리 돌오름과 이돈악의 모습이 보이고...
서영아리 오름의 정상에서, 그 웅장함에 넋을 잃었던 한대오름이 멀리 희미한 모습으로, 그리고 가까이로는 빈네오름, 그리고 그 오른 옆으론 나인브릿지 골프장으로 향하는 길이 보인다.
호명목장 내부 모습. 사진 몇 컷을 담고 있자니, 멀리 앞장서던 옆지기, 헐레벌떡 되 돌아와. 다른길로 가잔다. 개를 풀어 놓은것 같아. ㅎㅎㅎ. 짐짓 아무렇지 않은척 했지만...히유...모르고 갔다가 큰 낭패를 보았을 수도....ㅋㅋㅋ.
서영아리오름쪽에서 보았을때, 참으로 괴이하게도 생겼던, 언젠간 꼭 올라볼꺼야...했던 괴오름. 아하. 이쪽 어디메쯤해서 오르기 시작하면 되겠구먼.
빈네오름(우)과 다래오름(정면)
호명목장 출입구
호명목장 우측 목장초원입구. (이 길로 들어서 좌측, 목장 돌담길을 따라 들어갔다.)
하산길에 들렀던, 화전마을. 흙집의 모양이 참으로 정겹다. 어느 개인이 짓는단다. 어찌 생긴 양반일까. 제주사람일까? 아마도 자연을 품고 사는이...그럴것 같다.
우리 어린시절이라면, 아마도 이런 일은 개구쟁이들의 장난스런 놀이였겠지. 이 흙공들은 흙집 어느곳에 어떤 모양으로 사용될까. 언제쯤...쥔장과 만나 물어 보아야겠다.
화전마을에 들어선 몇 채 안되는 주택들의 소담스럽고 예쁜 모습들...
구름이 머무는 암자...라..... 아직은 절간의 모습을 갖추지는 않았지만, 부처님을 모신 곳이라 한다. 그래도 이름이 참 멋있지 않은가. 구름이 머무는 곳.... 마악 지프에서 내린 어느 분은...바람이 머무는 암자...라 해석한다.
양하밭. 옛날, 4.3 사건이 있기전, 이 곳에도 마을이 형성되었었던것 같다. 아마도 그해.. 소개된 마을은 아니었는지...주변은 집터로 사용되었음직한, 대나무숲이 많다. 옛날, 제주식 초가의 뒷켠은 이 양하들이 주인행세를 했었다. 그 어린순으로 황량했던 밥상에 올라 그나마 그 독특한 향으로 제주민의 미각을 돋아 주었던 터. 이렇게 대량으로 재배하는 모습은 처음. 제주, 특히 이곳 안덕지역에서는 양해라고 부른다.
빈네오름 아래 넓직하게 자리한 더덕밭.
어린시절, 이런 모습은 육지부에서나 볼 수 있었다. 제주에서는 이렇듯 장독들이 정겨운 모습으로 마주한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강원도 춘천...그 곳에선 내 어린시절, 이런 모습들이 있었지.
가지런히 정렬된 장독들 넘어 뜨락일까? 간간히 심어논 고들빼기(씀바귀?) 모습들도 보이고.. 텃밭의 모습 또한 편안한 마음을 갖게끔 하고...
아마도 4.3 이후, 현대화 바람을 타고 돌집위로 스레트가 올랐으리라. 전에는 초가였겠지...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폐가였다.
지금도 "꼬끼오오~~~" 하고 울어댄다. 아마도 바로 옆집. 토종닭 요리집에서 사육하고 있는 듯
저 멀리, 왕이메오름이 보이고...너른 초원을 가로질러 왕이메오름을 향하다.
주봉 정상은 단지 표석만이 있다. 너무도 울창한 숲과 덤불로 인해 주변의 오름은 물론, 그 웅장하다던 굼부리 모습은 확인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