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농부와 식물

[2009.09.17 (목) 맑음] 매발톱나무 (Berberis amurensis)

금오귤림원 2009. 9. 17. 22:55
매발톱나무 Berberis amurensis
쌍떡잎식물 미나리아재비목 매자나무과의 낙엽관목.꽃은 5월에 노란색으로 피고 양성화이며 짧은가지에서 총상꽃차례가 나와 10∼20송이가 달린다. 꽃잎은 6장이다. 열매는 장과로서 타원형이고 길이 1cm 정도이며 9∼10월에 빨간색으로 익는다. 잎과 가지는 약재나 염료로 쓰며 한국(중부 이북)·일본·중국·헤이룽강 등지에 분포한다.
함께 심으면 안 되는 상극 식물들

궁합(宮合)이란 혼담이 있는 남녀의 사주를 오행(五行)에 맞춰 배우자로서의 길흉을 헤아리는 행위이다. 요즘은 맞는 음식과 운동을 선택할 때 사용하기도 하고 직장에서 상사와 부하직원의 관계에 적용하는 등 쓰임새가 다양해졌다.

영양원을 주거나 받으며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좋은 관계도 있는 반면 상대방에게 해로운 병원균을 옮기는 나쁜 관계도 있다.

식물은 서로 궁합이 맞지 않는다고 해서 갈라설 수 없으니 어쩌면 사람의 궁합보다 더 중요하다. 나무를 심을 때 식물 사이의 궁합을 고려해서 사전에 나쁜 궁합을 제거해 주면 건강한 정원을 가꿀 수 있다.

법으로 금지한 커플, 밀과 매발톱나무

17세기 중반 프랑스의 밀 재배 농민들은 매년 발생하는 녹병 때문에 적지 않은 수확량의 감소를 감수해야 했다. 농민들은 매발톱나무 근처의 밀이 녹병에 더 많이 걸린다는 사실을 관찰했다. 그들은 매발톱나무가 녹병균을 만들어내고 밀로 옮겨간다고 믿었으며, 정부에 매발톱나무을 제거해 달라고 건의했다.

당시는 과학자조차 미생물과 병이 자연 발생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정부는 농민들의 건의를 무시했다. 게다가 매발톱나무는 가을에 새빨간 열매를 맺고 잎도 아름다워 관상용으로 시민들에게 인기가 있었기 때문에 베어버리기 힘들었다. 그러나 농민들은 보리밭에도 동일한 증상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추가로 발견해 정부에 더욱 강력하게 매발톱나무의 제거를 요구했다. 결국 1660년 프랑스는 루앙 지방의 밀과 보리 등 맥류 밭의 매발톱나무를 베어버리도록 법령을 제정했다. 식물병에 관한 세계 최초의 법령이었다.

이로부터 100년 뒤인 1755년, 미국의 매사추세츠주도 맥류 밭 주변에 있는 매발톱나무를 제거하는 명령을 공포했다. 매발톱나무가 병리학적으로 녹병균인 푹시니아 그래미니스(Puccinia graminis)의 ‘중간기주’임이 드러난 것은 그로부터 약 100년이 지난 19세기 중엽이었다.

식물병원성 곰팡이는 보통 한 종류의 식물체 위에서 포자가 발아해 세대를 거듭하지만, 맥류의 녹병균은 유연관계가 먼 두 종류의 식물에 기생해 생활사를 이어간다. 두 식물 중 경제 가치가 낮은 쪽을 중간기주라고 한다. 둘 중 한쪽만 없애도 녹병 피해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장석원/미국 매사추세츠대 박사후 연구원)
과실수 근처에 향나무는 금물

향나무는 사계절 푸르고 다양한 수형을 손쉽게 만들 수 있어 소나무와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랑받는 조경수다. 언뜻 보기에는 환상적인 궁합처럼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향나무와 유실수가 동시에 심어진 공원을 쉽게 볼 수 있다.그러나 사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두 그룹의 나무는 서로 상극이다. 늦은 가을, 사과가 달릴 무렵 사과나무나 배나무 등의 잎 뒷면을 관찰하면 무수히 많은 노란 반점을 볼 수 있다. 바로 붉은별무늬병 혹은 향나무 녹병이다. 별처럼 보이는 반점 위의 무수히 많은 병원균들은 나무의 광합성을 방해하고 영양원을 갉아 먹는다. 건강한 나무에 비해 일찍 낙엽이 되니 과일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짐노스포란지움 속의 한 곰팡이(Gymnosporangium juniperi-virginianae)는 사과나무의 잎에서 포자를 형성한 뒤 중간기주인 향나무에 옮겨가 겨울을 난다. 이들은 봄에 발아해 포자를 다시 만들고 사과나무로 이동해서 붉은별무늬병을 일으킨다. 포자들은 바람에 3~5km까지 이동한다.

이런 과학적 근거로부터 1914년 미국 버지니아주는 두 나무 그룹의 거리를 3.2km 이상 유지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붉은별무늬병을 막으려면 사과나무와 향나무 사이의 거리를 충분히 떼어놓아 이 곰팡이가 생활사를 완성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때로는 불가능하거나 실용적이지 못하다. 살균제를 두 기주 모두에 처리하거나 저항성인 사과 품종을 심는 것이 현실적이다.

이외에도 소나무혹병균(Cronatium quercuum)은 상수리나무 같은 참나무속 식물을, 소나무류 잎녹병균(Coleosporium asterum)은 국화과식물을, 잣나무털녹병균(Cronartium ribicola)은 까치밥나무류와 송이풀류를 각각 중간기주로 해 번식한다.

건강한 정원을 가꾸기 위한 기초는 제초다. 많은 식물병원균이 같은 과의 식물에 피해를 입히지만, 과를 가리지 않고 수백 종의 식물에 병을 일으킬 수 있는 ‘잡식성’ 병원균도 많다. 모기 유충이 웅덩이에서 자라듯 잡초도 나쁜 병원균의 서식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정원에 있는 잡초관리는 매우 중요하다.
참고 문헌 : George N. Agrios. 1998. 식물병리학. 제 4판 (고영진 등 번역, 월드사이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