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고전의 향기

[2009.06.04 (목) 맑음] 一臠之嘗輕, 救妹之死重也. (융통성이 필요할 때)

금오귤림원 2009. 6. 4. 11:15
一臠之嘗輕, 救妹之死重也.
일연지상경, 구매지사중야.

한 점의 고기를 먹는 것은 가벼운 일이고,
누이의 죽음을 구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 고상안(高尙顔),《태촌집(泰村集)》 〈유훈(遺訓)〉
조선 중기의 학자 고상안(高尙顔, 1553~1623) 선생이 한 선비 남매의 일을 기록하면서 남긴 말입니다.
남매가 부친상을 당했을 때였습니다.

누이는 너무나 슬퍼한 나머지 병을 얻어 위중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선비가 권했습니다.

“기력을 회복하게 하기 위해서는 고기를 먹는 것이 좋겠다.”

그러자 누이가 대답했습니다.

“만약 오라버니께서 드신다면 저도 먹겠습니다.”

그러나 선비는 감히 고기를 먹지 못하였습니다.
상주는 고기를 입에 대지 않는 것이 전통적인 예법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누이는 죽고 말았습니다.

훗날 선비는 후회하면서 통한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내가 고기를 먹지 않는 바람에 누이가 죽은 것이다.”

예는 인간이 오랜 세월 사회생활을 하면서 경험적으로 도출해 낸 최적의 행동 규약이자 원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도덕적인 면과 결부가 되기 때문에 다른 어떤 원칙보다도 엄격하게 지켜지도록 요구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사회생활은 상호작용의 연속입니다. 때로는 그 원칙들이 지켜지지 못할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일의 경중(輕重)을 살펴서 과감하게 원칙을 탈피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맹목적으로 원칙에만 얽매이다보면, 오히려 원칙을 지키지 않은 것만 못한 결과가 도출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권도(權道)를 쓴다.’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원칙에 어긋나기는 하지만,
부득이한 상황이라 임시로 융통성을 발휘하는 것을 뜻합니다.
옮긴이 : 권경열(한국고전번역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