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전번역원 11

[2009.10.15 (수) 맑음] 청빈(淸貧), 청부(淸富)

素富貴。行乎富貴。素貧賤。行乎貧賤。 소부귀。행호부귀。소빈천。행호빈천。 부귀한 처지에 있으면 부귀에 걸맞게 행동하고, 빈천한 처지에 있으면 빈천에 걸맞게 행동하라. - 윤기(尹愭), 〈빈부설(貧富說)〉, 《무명자집(無名子集)》 ‘부자아빠 되기’, ‘재테크 전략’ 등 돈 잘 버는 비법을 다루는 책이 쏟아져 나옵니다. 어쩌면 그런 책을 만들어 파는 일 자체가 돈 버는 비법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자본주의의 시대, 돈이 얼마나 많은가가 성공의 잣대가 되고, 돈을 얼마나 잘 벌 수 있는가가 신지식인을 선정하는 기준이 되는 세상이니 그런 것을 탓할 수만은 없겠습니다. 그런데 묘한 건, 이렇게 너도나도 돈을 벌고 싶어 하면서도 정작 돈을 잘 버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리 우호적이지만은 않다는 점입..

[2009.10.08 (목) 맑음] 초라한 나의집

心安身便 孰謂之陋 심안신편 숙위지루 마음이 안정되고 몸이 편안하거늘 그 누가 누추하다 하는가. - 허균(許筠),〈누실명(陋室銘)〉,《성소부부고(惺所覆瓿稿)》 위 글은 조선 중기의 문인 성소(惺所) 허균(許筠 1569~1618)이 지은〈누실명(陋室銘)〉의 일부입니다. 저자는 해가 들면 밝고 따스한 집에 삽니다. 다른 것은 없더라도 책은 두루 갖추어두고, 차를 따르거나 향을 사르며 천지(天地)와 고금(古今)에 대한 생각에 잠기곤 합니다. 남들은 저런 누추한 집에서 어찌 사나 하겠지만 자신에게는 신선 세계가 따로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음이 안정되고 몸이 편안하거늘 그 누가 누추하다 하는가? 내가 누추하다고 여기는 것은 몸가짐과 명예가 모두 썩은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누추한 집에서 다소 궁핍하게 살아도..

[2009.10.01 (목) --비] 可憐利害相形處 只見絲毫不見軀 ( 벼랑에서 싸우다니)

可憐利害相形處 只見絲毫不見軀 가련이해상형처 지견사호불견구 가련타, 이해가 상충되는 곳이라면, 작은 이익 집착할 뿐, 몸은 아니 돌아보네. - 권구(權榘),〈투자(鬬者)〉,《병곡집(屛谷集)》 ‘당국자미(當局者迷), 방관자명(傍觀者明)’이라는 말이 있다. 당사자들보다 훈수 두는 사람이 바둑수를 잘 보게 마련이라는 뜻이다. 제삼자가 되면 이해관계에서 초월하기 때문에 훨씬 객관적으로 형세를 관찰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이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은 항상 이해가 대립하지 않을 수 없다. 관계자가 작게는 두 사람, 크게는 수천, 수만 명이 될 수도 있다. 대부분은 자신의 이익만을 극대화하기 위해 극렬하게 싸운다. 병곡(屛谷) 선생이 위 시구의 앞 구절에서 설정한 것처럼 싸우는 장소가 천길 벼랑 위일지라도 아랑곳하지 않..

[2009.09.24 (목) 맑음] 王於我足矣。 而帝以何德堪之。 (아첨의 기술)

王於我足矣。 而帝以何德堪之。 왕어아족의。 이제이하덕감지。 왕이라는 명칭이면 나에게는 충분하니, 황제라는 명칭이야 내가 무슨 덕이 있어 감당하겠느냐? - 이하곤(李夏坤),〈아첨하는 여우 이야기[媚狐說]〉,《두타초(頭陀草)》 여우는 호랑이에게 아첨을 잘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호랑이는 기분이 좋아서 자기가 먹던 것을 여우에게 남겨주곤 했죠. 그러던 어느 날 여우는 호랑이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모두들 당신을 ‘산중의 왕’이라고 부르지만, ‘왕’ 보다는 ‘황제’가 더 높습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당신을 ‘황제’라고 불러서 모든 짐승들에게 존귀함을 과시하는 게 어떨까요?” “아니다. 기린은 나보다 어진데도 황제라고 부르지 않고, 사자는 나보다 용맹한데도 황제라고 부르지 않더구나. 왕이라는 명칭이면 나에게는 충분..

[2009.08.20 (목) 맑음] 醉一日則遲一日。醉一月則遲一月。(과음(過飮)에 대한 경계)

醉一日則遲一日。醉一月則遲一月。 취일일즉지일일。취일월즉지일월。 하루를 취하면 하루가 늦어지고, 한 달을 취하면 한 달이 늦어진다. - 정양(鄭瀁),〈자경잠(自警箴)〉《포옹집(抱翁集)》 사실 음주는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기쁨은 더욱 크게 해주고, 슬픔은 잊게 만들어 줍니다. 사람들과는 쉽게 어울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줍니다. 의사들도 혈액 순환을 위해서 한두 잔 정도를 권하기도 합니다. 무엇이든 그렇겠지만, 과도한 것이 문제가 되겠지요. 음주를 경계하는 말들은 동서고금에 많습니다. 그렇지만 정양(鄭瀁, 1600~1668) 선생이 스스로를 경계한 말씀처럼 와 닿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선생은 조선 효종조의 문신으로,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었습니다. 어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외조모 슬하에..

[2009.08.13 (목) 맑음] 夏熱冬寒。四時之常數也。苟反是則爲恠異。 (철모르는 사람들)

夏熱冬寒。四時之常數也。苟反是則爲恠異。 하열동한。사시지상수야。구반시즉위괴이。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것이 사계절의 정상적인 이치니, 만일 이와 반대가 된다면 곧 괴이한 것이다. - 이규보(李奎報),〈괴토실설(壞土室說)〉, 《동문선(東文選)》96권 이규보(1168~1241) 선생이 어느 날 밖에서 돌아와 보니, 아들이 집안에 흙을 파고 무덤 모양의 집을 만들어 놓았더랍니다. 만든 이유를 묻자, “훈훈하여 겨울에 화초나 과일을 저장하기에 좋고, 또 길쌈하는 부인네들의 손이 얼어터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하였다는군요. 아들의 참신하고도 실용적인 발상을 칭찬할 수도 있으련만, 이규보 선생은 오히려 버럭 화를 내면서 그 흙집을 당장 뜯어내라고 야단을 칩니다. “길쌈이란 것도 제 시기가 있는 법인데, ..

[2009.08.06 (목) 맑음] 自上流洗鮮肉 則魚飮腥羶之水 而聞腥羶之臭 ... (상류에서 날고기를 씻으면)

自上流洗鮮肉 則魚飮腥羶之水 而聞腥羶之臭 자상류세선육 즉어음성전지수 이문성전지취 在上流糜亂蓼葉 則魚飮穢惡之水 而聞惡臭 재상류미란료엽 즉어음예악지수 이문악취 상류에서 날고기를 씻으면 물고기는 비린내 나는 물을 마시면서 비린내를 맡고, 상류에서 여뀌 잎이 썩어 문드러지고 있으면 물고기는 더러운 물을 마시면서 악취를 맡는다. - 최한기,〈제취중 순담위최(諸臭中 純澹爲最)〉《기측체의(氣測體義)》 조선 말기의 학자 혜강(惠崗) 최한기(崔漢綺 1803~1877)가 지은 ‘모든 냄새 가운데 맑은 것이 가장 좋다.’는 글의 일부입니다. 이 글은 사람의 감각 가운데 가장 빨리 느끼고 속일 수 없는 것이 후각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물고기가 맑은 물을 마시며 제멋대로 노닐 수 있으려면 물을 맑게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

[2009.07.30 (목) 맑음] 初而不去。中而不覺。終而溺焉。(욕심 때문에 몸을 망치다)

初而不去。中而不覺。終而溺焉。 초이불거。중이불각。종이익언。 처음에는 떠나지 않고, 도중에는 깨닫지 못하고, 결국에는 빠져 죽는다. - 강유선(康惟善),〈주봉설(酒蜂說)〉,《주천유고(舟川遺稿)》 사람의 욕심은 한이 없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욕심을 부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흔히 욕심 많은 인간을 자신의 몸이 타버리는 줄도 모르고 화려한 불꽃을 향해 날아드는 불나비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조선 중기의 문신인 주천(舟川) 강유선(康惟善, 1520~1549) 선생이 술을 마시고 있을 때였습니다. 열린 술 단지에 벌이 한 마리 날아와 술을 빨아먹기 시작했습니다. 선생은 저러다가 빠져 죽겠다 싶어 손을 휘저어 날려 보냈습니다. 그러나 벌은 얼마 못가서 금방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몇 번..

[2009.07.23 (목) 맑음] 逐鹿而不見山。攫金而不見人。 (조금만 눈을 돌리면)

逐鹿而不見山。攫金而不見人。 축록이불견산。확금이불견인。 사슴을 쫓느라 산을 보지 못하고, 금을 움켜잡느라 사람을 보지 못한다. - 이제현(李齊賢), 〈운금루기(雲錦樓記)〉,《익재난고(益齋亂藁)》 많은 사람들이, 도시를 벗어난 전원에서의 한가한 생활을 동경합니다. 도시 생활이 답답하고, 직장 생활이 지겹다면서 늘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어디론가 떠난다고 해서 반드시 한가해지고, 전원에서 생활한다고 해서 과연 마음의 여유가 생겨나는 것일까요? 권겸(權廉)이란 사람이 도성 남쪽의 연못가에 다락을 짓고 운금루(雲錦樓)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 1287~1367) 선생이 초청을 받아 가서 보니 아름답긴 아름다우나, 그곳은 민가가 즐비하고 왕래하는 자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

[2009.07.16 (목) 맑음] 形雖小蜉蝣 毒則倍蚤蝎 (성가신 모기)

形雖小蜉蝣 毒則倍蚤蝎 형수소부유 독즉배조갈 몸은 하루살이만큼 작으나(形雖小蜉蝣), 독은 벼룩이나 전갈의 배나 된다(毒則倍蚤蝎). - 신익상(申翼相), 모기를 읊다[詠蚊], 《성재유고(醒齋遺稿)》 장마가 그치고 무더위가 찾아오면 여름의 불청객 모기들도 때를 만난 듯이 극성을 부릴 것입니다. 모기약도 방충망도 없던 시절에는 모기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가 지금보다 훨씬 더 컸으리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인지 선인(先人)들이 모기를 소재로 지은 재미있는 글들이 많습니다. 위 구절은 성재(醒齋) 신익상(申翼相 1634~1697)이 모기를 소재로 지은 시의 일부입니다. 저자는 이 시에서 사람 못살 게 굴기론 모기에 대적할 게 없다면서 하루살이만한 작은 몸과 가을 터럭 같은 가느다란 주둥이로 살을 쏘아대는데 독이 벼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