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향기 13

[2009.09.24 (목) 맑음] 王於我足矣。 而帝以何德堪之。 (아첨의 기술)

王於我足矣。 而帝以何德堪之。 왕어아족의。 이제이하덕감지。 왕이라는 명칭이면 나에게는 충분하니, 황제라는 명칭이야 내가 무슨 덕이 있어 감당하겠느냐? - 이하곤(李夏坤),〈아첨하는 여우 이야기[媚狐說]〉,《두타초(頭陀草)》 여우는 호랑이에게 아첨을 잘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호랑이는 기분이 좋아서 자기가 먹던 것을 여우에게 남겨주곤 했죠. 그러던 어느 날 여우는 호랑이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모두들 당신을 ‘산중의 왕’이라고 부르지만, ‘왕’ 보다는 ‘황제’가 더 높습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당신을 ‘황제’라고 불러서 모든 짐승들에게 존귀함을 과시하는 게 어떨까요?” “아니다. 기린은 나보다 어진데도 황제라고 부르지 않고, 사자는 나보다 용맹한데도 황제라고 부르지 않더구나. 왕이라는 명칭이면 나에게는 충분..

[2009.09.17 (목) 맑음] 與其視人寧自視。 與其聽人寧自聽。(나에게서 구하라)

與其視人寧自視。 與其聽人寧自聽。 여기시인녕자시。 여기청인녕자청。 남을 보느니 나 자신을 보고 남에게서 듣느니 나 자신에게서 들으리라. - 위백규(魏伯珪),〈좌우명(座右銘)〉,《존재집(存齋集)》 위 글은 조선 중기 문인 존재(存齋) 위백규(魏伯珪 1727 ~ 1798)가 10세 때에 지은 좌우명(座右銘)입니다. 요즘으로 따지면 초등학교 3학년생 정도 된 어린이가 세상을 살면서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노라 선언한 것으로, 자신을 굳게 믿지 않고는 하기 어려운 말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판단해 해결할 수 있는 일을 가지고도 남에게 의존해서 결정하려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들은 어떻게 하나?’ 두리번거리고, ‘남들이 뭐라 할까?’ 초조해하느라, 정작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스스로 만족..

[2009.09.10 (목) 맑음] 未可以言而言者 其罪小。可以言而不言者 其罪大。(침묵하는 죄가 더 크다)

未可以言而言者 其罪小。可以言而不言者 其罪大。 미가이언이언자 기죄소 。가이언이불언자 기죄대。 말하지 말아야 할 때에 말하는 것은 그 죄가 작지만, 말해야 할 때에 말하지 않는 것은 그 죄가 크다. - 조선(朝鮮) 정조(正祖),〈추서춘기(鄒書春記)〉,《홍재전서(弘齋全書)》 ‘설화(舌禍)’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말은 화를 불러들이는 문입니다. 어떻게 말을 하느냐에 따라 화가 될 수도 있고 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요즘 들어 말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부쩍 늘어났습니다. 아마도 인터넷 같은 여론 전달 수단들이 발전하다보니 연예인, 정치가, 지도층 인사들의 부적절한 말 한마디는 곧 비생산적인 소모전으로 이어질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선현들은 말을 조심하라고 가르쳤습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아예 말 자체..

[2009.09.03 (목) 맑음] 樂極而生哀。當益而慮謙。(좋은일을 만났을 때)

樂極而生哀。當益而慮謙。 락극이생애。당익이려겸。 즐거움이 극에 달하면 슬픔이 생기고 유익한 일을 당하면 겸손하기를 생각해야 한다. - 남효온(南孝溫), 〈유해운대서(遊海雲臺序)〉, 《추강집(秋江集)》 〈해운대〉라는 영화가 천만 관객 동원으로 화제가 되었습니다. 완성도 있는 컴퓨터그래픽에 가족이나 휴머니즘을 담은 이야기를 집어넣어 확실한 볼거리를 제공했다는 점과, 모두에게 친숙한 관광지가 실제 배경이 되었다는 점이 인기를 끄는 요인이었다고 합니다. 해운대는 이미 오래 전부터 명승지로 이름난 곳이었습니다. 남효온(南孝溫:1454~1492) 선생의 표현에 따르면, “큰 바다가 망망하고 수평선이 아득한 곳에 푸른 하늘에 뿌리박아 볼록 솟은 산이 있고 파도와 맞닿는 곳에 천 명의 인원이 앉을 만한 푸른 바위”가 해..

[2009.08.20 (목) 맑음] 醉一日則遲一日。醉一月則遲一月。(과음(過飮)에 대한 경계)

醉一日則遲一日。醉一月則遲一月。 취일일즉지일일。취일월즉지일월。 하루를 취하면 하루가 늦어지고, 한 달을 취하면 한 달이 늦어진다. - 정양(鄭瀁),〈자경잠(自警箴)〉《포옹집(抱翁集)》 사실 음주는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기쁨은 더욱 크게 해주고, 슬픔은 잊게 만들어 줍니다. 사람들과는 쉽게 어울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줍니다. 의사들도 혈액 순환을 위해서 한두 잔 정도를 권하기도 합니다. 무엇이든 그렇겠지만, 과도한 것이 문제가 되겠지요. 음주를 경계하는 말들은 동서고금에 많습니다. 그렇지만 정양(鄭瀁, 1600~1668) 선생이 스스로를 경계한 말씀처럼 와 닿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선생은 조선 효종조의 문신으로,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었습니다. 어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외조모 슬하에..

[2009.08.13 (목) 맑음] 夏熱冬寒。四時之常數也。苟反是則爲恠異。 (철모르는 사람들)

夏熱冬寒。四時之常數也。苟反是則爲恠異。 하열동한。사시지상수야。구반시즉위괴이。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것이 사계절의 정상적인 이치니, 만일 이와 반대가 된다면 곧 괴이한 것이다. - 이규보(李奎報),〈괴토실설(壞土室說)〉, 《동문선(東文選)》96권 이규보(1168~1241) 선생이 어느 날 밖에서 돌아와 보니, 아들이 집안에 흙을 파고 무덤 모양의 집을 만들어 놓았더랍니다. 만든 이유를 묻자, “훈훈하여 겨울에 화초나 과일을 저장하기에 좋고, 또 길쌈하는 부인네들의 손이 얼어터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하였다는군요. 아들의 참신하고도 실용적인 발상을 칭찬할 수도 있으련만, 이규보 선생은 오히려 버럭 화를 내면서 그 흙집을 당장 뜯어내라고 야단을 칩니다. “길쌈이란 것도 제 시기가 있는 법인데, ..

[2009.08.06 (목) 맑음] 自上流洗鮮肉 則魚飮腥羶之水 而聞腥羶之臭 ... (상류에서 날고기를 씻으면)

自上流洗鮮肉 則魚飮腥羶之水 而聞腥羶之臭 자상류세선육 즉어음성전지수 이문성전지취 在上流糜亂蓼葉 則魚飮穢惡之水 而聞惡臭 재상류미란료엽 즉어음예악지수 이문악취 상류에서 날고기를 씻으면 물고기는 비린내 나는 물을 마시면서 비린내를 맡고, 상류에서 여뀌 잎이 썩어 문드러지고 있으면 물고기는 더러운 물을 마시면서 악취를 맡는다. - 최한기,〈제취중 순담위최(諸臭中 純澹爲最)〉《기측체의(氣測體義)》 조선 말기의 학자 혜강(惠崗) 최한기(崔漢綺 1803~1877)가 지은 ‘모든 냄새 가운데 맑은 것이 가장 좋다.’는 글의 일부입니다. 이 글은 사람의 감각 가운데 가장 빨리 느끼고 속일 수 없는 것이 후각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물고기가 맑은 물을 마시며 제멋대로 노닐 수 있으려면 물을 맑게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

[2009.07.30 (목) 맑음] 初而不去。中而不覺。終而溺焉。(욕심 때문에 몸을 망치다)

初而不去。中而不覺。終而溺焉。 초이불거。중이불각。종이익언。 처음에는 떠나지 않고, 도중에는 깨닫지 못하고, 결국에는 빠져 죽는다. - 강유선(康惟善),〈주봉설(酒蜂說)〉,《주천유고(舟川遺稿)》 사람의 욕심은 한이 없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욕심을 부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흔히 욕심 많은 인간을 자신의 몸이 타버리는 줄도 모르고 화려한 불꽃을 향해 날아드는 불나비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조선 중기의 문신인 주천(舟川) 강유선(康惟善, 1520~1549) 선생이 술을 마시고 있을 때였습니다. 열린 술 단지에 벌이 한 마리 날아와 술을 빨아먹기 시작했습니다. 선생은 저러다가 빠져 죽겠다 싶어 손을 휘저어 날려 보냈습니다. 그러나 벌은 얼마 못가서 금방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몇 번..

[2009.07.23 (목) 맑음] 逐鹿而不見山。攫金而不見人。 (조금만 눈을 돌리면)

逐鹿而不見山。攫金而不見人。 축록이불견산。확금이불견인。 사슴을 쫓느라 산을 보지 못하고, 금을 움켜잡느라 사람을 보지 못한다. - 이제현(李齊賢), 〈운금루기(雲錦樓記)〉,《익재난고(益齋亂藁)》 많은 사람들이, 도시를 벗어난 전원에서의 한가한 생활을 동경합니다. 도시 생활이 답답하고, 직장 생활이 지겹다면서 늘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어디론가 떠난다고 해서 반드시 한가해지고, 전원에서 생활한다고 해서 과연 마음의 여유가 생겨나는 것일까요? 권겸(權廉)이란 사람이 도성 남쪽의 연못가에 다락을 짓고 운금루(雲錦樓)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 1287~1367) 선생이 초청을 받아 가서 보니 아름답긴 아름다우나, 그곳은 민가가 즐비하고 왕래하는 자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

[2009.07.16 (목) 맑음] 形雖小蜉蝣 毒則倍蚤蝎 (성가신 모기)

形雖小蜉蝣 毒則倍蚤蝎 형수소부유 독즉배조갈 몸은 하루살이만큼 작으나(形雖小蜉蝣), 독은 벼룩이나 전갈의 배나 된다(毒則倍蚤蝎). - 신익상(申翼相), 모기를 읊다[詠蚊], 《성재유고(醒齋遺稿)》 장마가 그치고 무더위가 찾아오면 여름의 불청객 모기들도 때를 만난 듯이 극성을 부릴 것입니다. 모기약도 방충망도 없던 시절에는 모기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가 지금보다 훨씬 더 컸으리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인지 선인(先人)들이 모기를 소재로 지은 재미있는 글들이 많습니다. 위 구절은 성재(醒齋) 신익상(申翼相 1634~1697)이 모기를 소재로 지은 시의 일부입니다. 저자는 이 시에서 사람 못살 게 굴기론 모기에 대적할 게 없다면서 하루살이만한 작은 몸과 가을 터럭 같은 가느다란 주둥이로 살을 쏘아대는데 독이 벼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