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농부의 세상

구수한 남자를 만나다.

금오귤림원 2006. 9. 22. 03:49




제주에서..바람을 만나다.


제주 남쪽 서귀포 끝자락에서 바람을 만났다.

끝없이 밀려와 부딪히는
하얀 포말위에 바람이 타고 있었다.

바람은 파도를 부추겨 바위를 애무하고,
바람은 구름을 꼬드껴 바위를 씻고 있었다.

바위의 심장을 향해 파고들던 바람은
절벽의 비정함에 소스라치며 이내 기운을 잃었다,

뒷걸음질 쳐 내가슴에 닿았을 땐,
한소큼 고독의 파편만 남긴채 분해되고 말았다.

난 그것이 싫지 않았다.

난 이미 눈물로 눈을 씻을 줄 알고,
고독으로 서러움을 밀어낼 줄 알기 때문이다.

통나무집 잔디마당에 깔린
마루기와 한장 한장 속엔

아직도 미련을 못 버린 바람이 숨어 있었다.



--------------- 늘바다 통나무 펜션에서, (마루)




소길리 그 마을 저편 깊숙한 산 속
오롯히 자리한 원목 통나무집
그 그윽한 곳, 싱그런 내음속

주인장 익숙한 음식솜씨
곁들인 구수한 곡차 한잔

저물어 지척도 구분하기 힘든 그 곳

정이 그리워 허리춤에 얼굴 부비던
말자가 거기 있었고

다칠 염려없는 꼬마 흑돼지 한마리
까불거리며 그 말자 놀림에 재미 붙인날

꺼벙인 그 큰 눈망울 껌벅이며
두런 두런 두툼한 통나무 문 너머
굵직한 남자들 나즉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던 날

---

밤 깊은 줄 모르며 나누던 입담속에
이렇듯 마음 한 켠을 편안케 하는

진한 내음이 있었을 줄 진정 몰랐었네.

오십줄이 내일 모레
굵직한 손 마디 마디

그 험한 도편수일 즐겁기만 했을까.

작달막한 체구, 잘 생긴 얼굴
솥뚜껑과 견줄 두꺼운 손바닥,
그리고 손가락....

그 마음 한 켠에

이렇듯 가녀린 사랑이
그처럼 간절한 바램이
진정 강렬한 꿈이

숨어 있을줄 진정 난 몰랐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