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멋/제주의 오름

[2006.05.14 (일) 맑음] 서영아리오름, 하늬복이오름, 마복이오름, 어오름

금오귤림원 2006. 5. 14. 21:14
기어코 서영아리 오름을 오르고 말리라.

역시 늦잠을 자다, 부산한 소리에 눈을 떳다. 이미 벌써부터 늘상 동행하는 아주머니의 전화가 있었던 모양이다. 세상에...어제 새벽까지 그 많은 쑥을 다듬는 모습을 보았는데 지칠새도 없는 모양이다.

신이 머무는 곳. 영아리의 '영'은 곧 신을 의미한단다. 낯이라도 씻고 움직여야 하지 않겠는지....

조금 늦게 출발했다. 인터넷으로 새벽까지, 서영아리오름으로 향하는 길을 어렴풋이나마 찾아 놓았으니 근처라도 갈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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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산업도로로 해서 제2산록도로로 접어들었다. 대갹 7Km쯤 달렸을까? 오른편에 "롯데 스카이 힐 오픈 골프대회" 라는 커다란 아치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 비교적 넓은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 있다.

이 길로 들어설까?
어제 확인해 둔 서영아리오름의 위치를 생각하면 이 쯤의 도로가 맞을 듯 싶어 좌회전하여 그 시멘트길로 들어섰다.

얼마쯤 올랐을까! 이내 그 넓직한 시멘트 길이 끝나고 그 정점엔 그리 웅장하지 않은 건물이 눈에띈다.

"남제주군 안덕면 위생 매립장"

그리고 그 바로 뒷편 서쪽으로 "어오름"이 나즈막한 모습으로 길손을 맞는다.

한 20여미터쯤 다시 내려와 오른편 빈 공간에 주차를 하고 나니, 어오름 방향으로
우마나 사람들이 들락거린 작은 소로가 보인다.

"고사리는 없을 것 같은데.. 그냥 오름으로 향하지?"
"안 허크라! 그냥 고사리나 찾아 볼래."

일단 앞에 보이는 어오름으로 향했다. 혼자...
길은 이어지다 끊어지고, 다시 찾아 이어보면 이내 끊어져 버린다.
영산이라 나그네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을 모양이다.

어오름 바로 아래까지 접근하니 작은 소로가 오른쪽으로 이어진다.
한 반 바퀴쯤 돌았을까? 비로소 정상쪽으로 향한 작은 길이 이어지고
이내 한 달음에 어오름 정상에 다다른다.

"아! 이래서 어제 서영아리 주변의 오름들(하늬복이, 마복이, 어오름)을 찾을 수가 없었구나."

하늬복이, 마복이 오름은 서영아리 오름과 마치 한 몸체를 이루고 머리만 셋 달려 하늘을 향한
모습이다. 능선과 능선이 서로 맞닿은 중간 부분은 마치 다른 오름의 굼부리를 연상케 하지만
한 발작도 옮겨 놓지 못할 정도로 울창한 소나무와 삼나무, 그리고 가시덤불, 잡목들로 빽빽히
들어차 있다.

"여기서 그냥 돌아갈까?"

그럴수는 없었다. 서영아리 오름의 정상에 서면, 발아래로 나인브릿지 골프장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올 것 같은 생각과, 멀리 한라산 아래 웅장하게 펼쳐진 큰 산의 모습이 실제 어떤 모습일지
무척 궁금했으니까...

어오름을 내려와 바로 서영아리 오름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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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동안을 걸어지만, 길을 잘 못 찾은 모양이다.
30여분정도 헤매었을까?
다시 원위치로 돌아와 갈림길이 있었는지를 되 짚었다.

차량이 다닐 수 있을 정도의 넓직한 비포장 길이 눈에 띈다.
그 길을 따라 10여분 걸었을까? 왼쪽으로 서영아리오름이 자리하고 있고,
돌담이 허물어진 틈을 따라 산 정상으로 향한 작은 길이 보인다.

"옳거니. 이 길을 따르면 정상으로 향하겠구나."

하늬복이오름과 서영아리오름을 잇는 능선 중간 부분쯤에서 그 길은 끝났다.

어느쪽을 먼저 오를까. 서영아리 오름의 정상부는 짙은 초록색으로 그 간의 오름들의 완만한
곡선의 능선을 볼 수 없었지만, 먼저 그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어쩜 서영아리 오름정상으로 해서 하늬복이오름 정상까지 한 바퀴 돌 수도 있겠지.

그러나 그 생각은 여지없이 깨져 버렸다.
가시덤불과 빽빽한 소나무, 삼나무 가지들을 헤치며 서영아리 오름의 정상부에 도착했지만,
반경 2.5M 정도의 주변 나무들을 정리한 공간과 그 중심부의 측량기준점만이 지친 나그네를
반길뿐, 사방이 빽빽한 숲으로 둘러싸여, 기대했던 골프장 전경과 한라산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그래도 길은 있을까?
가던 방향으로 하늬복이오름의 정상을 향해 발길을 옮기다 결국 포기하고 오던길을 되돌아
나왔다. 다시 원점을 거쳐 반대방향으로 하늬복이 오름을 향하니 커다란 바위 몇 몇이 그 길목을 막아서서 나그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신들의 호위병일까?

남동방향 조금 아래쪽에 마복이오름이 다소곳한 모습으로 앉아있고, 그 뒤엔 어오름, 그리고 그 건너편으로 서귀포시 쓰레기 매립소각장일까? 홀로선 커다란 굴뚝아래 현대식 건물이 오롯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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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잘 못 들었다. 비교적 넓은 길을 따라 편히 되 돌아 나올 수 있으리란 기대를 했는데.... 가도 가도 끝이 없다. 길은 이어지다 다시 끊어지기를 서너번 반복했을까. 그리 깊지않은 자그마한 계곡에 물이 고여있다. 얼마나 많은 비가 내려 이 계곡을 휩쓸었을까. 한 나무는 그 힘을 이기지 못해 뿌리가 송두리채 뽑혀 버렸고, 그나마 희미하던 작은 오솔길은 흔적도 없이 지워져 버렸다. 얼마나 헤매었을까. 잡목과 가시덤불을 헤치며 계곡을 따라 걷기를 한 참여... 오전에 자동차로 왔던 그 시멘트길을 만났다.

"휴~~우!" 한 시름 놓기는 했지만, 얼마나 이 동산을 올라야 할런지...주차해 놓은 곳에는 이미 고사리꺽기를 포기한 두 아주머니가 벌써 두 시간여 기다리고 있을텐데... 마음은 바쁘지만, 다리는 그 힘을 다 하지 못한다. 목도 마르고, 배도 고프고, 힘은 빠지고... 그래도 어쩌랴. 가야만 하는걸...

대략 1.5 Km 정도를 올랐나 보다. 자동차 앞머리가 눈에 들어온다. 이 보다 기쁜일은 아마도 없으리라.

허겁지겁 물부터 들이 마시고, 컴라면에 밥 한 공기 뚝딱 해치우곤 커피 한잔에 피곤함을 풀고 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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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뜯어온 쑥으로 쑥찻잎을 만드느라 부산하다. 멤버인 두 아주머니와 집사람, 어? 오늘은 한 사람이 더 늘었네?

커다란 가마솥에 생쑥을 넣고, 은근한 가스불에 적당히 덖어낸 다음 손으로 일일이 비비고 하는 과정을 아홉번 정도 거치니 마치 녹찻잎을 덖어내어 포장한 것과 같은 비슷한 모양이 나온다. 녹찻잎 덖는 과정과 똑같이 진행한다고 한다.

최종 손질을 마치고 나온 그 녀석들을 보니 정말 보기에도 그럴 듯 하다. 뜨끈한 물에 불려 우려낸 그 쑥 차는 녹차 저리가라할 정도의 향과 맛을 내고....

작업장은 이내 그 고소한 쑥향으로 가득찼다.